큐비트 구현에 韓 가장 앞선 반도체 기술 필수
오류 정정 등 상용화 앞길 과제 산적
양자컴퓨터는 인류를 구원할 신의 기술인가? 지난달 26~29일 서울 동대문DDP에서 열린 ‘퀀텀 코리아 2023’ 행사를 지켜본 소감이다. 이 행사에선 첨단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인류가 처한 기후 변화ㆍ자원 고갈 등 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반면 양자컴퓨터가 만능해결사가 아니며, 기존 기술과 달리 단시간 내에 해결되지 않을 수많은 도전 과제들이 앞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자컴퓨터의 장밋빛 전망과 그림자를 살펴보자.
‘큐비트(Quantum + Bit=Qubit)’를 이해해야 양자컴퓨터를 들여다볼 수 있다. 기존 디지털비트 컴퓨터는 전기가 통하면 1, 안 통하면 0인 디지털 비트를 사용한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 사칙 연산을 처리하고 이를 응용해 복잡한 계산들도 할 수 있다.
큐비트는 양자과학의 중첩(superposition) 원리를 응용한다. 양자과학은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들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원자가 ‘관측’되기 전까지는 상태가 결정돼 있지 않고 중첩돼 있다고 본다. 이를 이용해 훨씬 더 빠른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즉 비트가 3개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경우의 수는 (0, 0, 0)에서 (1, 1, 1)까지 모두 8개인데, 디지털 비트는 이 중 한 개만 골라 사용할 수 있지만 큐비트는 8개를 모두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이를 20큐비트로 늘리면 무려 104만8576개의 정보를 한꺼번에 표시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기존 디지털컴퓨터는 직렬 방식이다. 통로가 하나뿐인 미로에서 모든 길을 하나씩 직접 가본 후 시행착오를 거쳐 정답을 찾아낸다. 단순 작업이면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변수가 많고 복잡한 계산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병렬 방식이다. 갈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한꺼번에 분석해 출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론상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일반 컴퓨터보다는 1경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큐비트는 0과 1 사이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데, 한 원자가 A와 B 상태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들면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한 번에 한 개씩만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비트와 달리 한꺼번에 가능한 숫자만큼 동작해서 정보처리를 훨씬 빨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얽힘(entanglment) 현상도 양자정보기술의 핵심 원리다. 비유하자면 원자를 둘로 쪼개 놓았을 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힘 상태를 유지한다. 한쪽의 상태가 변하면 다른 쪽의 상태도 변한다. 이를 응용해 미세한 변화도 측정하는 양자센서,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보안이 가능한 양자통신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기존 디지털 비트를 구현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반도체다. 트랜지스터를 아주 작게 만들어 실리콘 웨이퍼 위에 쌓은 것들이다. 양자컴퓨터의 핵심인 큐비트를 구현하기 위해선 4가지 기술이 주로 연구되고 있다. 우선 구글이나 IBM 등이 연구 중인 초전도 큐비트가 있다. 모든 물질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절대 온도 0도(영하 273.15도)까지 냉각시킨 상태에서 실리콘 웨이퍼 위에 조셉슨 접합·커패시터·인덕터와 같은 소자를 쌓아 큐비트를 구현한다.
‘이온트랩’ 방식도 있다. 한국 출신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공동 창립한 아이온큐(IonQ)가 연구 중이다. 진공 상태의 작은 체임버에서 이온(원자)을 포획해 큐비트로 활용한다. 진공 체임버 내에서 전압을 조절해 이온을 공중에 둥둥 띄워 가둔 후 해당 이온을 트랜지스터처럼 동작시킨다. 따로 소자를 만들지 않고 이온(원자) 하나하나를 큐비트로 활용한다. 광자 큐비트는 빛 알갱이 하나하나에 양자 상태를 인코딩해서 큐비트로 활용한다. KIST가 연구 중인 다이아몬드 NV 센터 큐비트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탄소 원자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결정에서 탄소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질소 원자를 두고, 바로 그 옆에 탄소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게 빈자리를 만들어 큐비트로 활용한다.
이같은 큐비트 구현 기술에는 공통으로 반도체 공정 기술이 필요하다. 기존 반도체 제작과 유사한 초전도 큐비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온트랩 방식도 이온을 포획하는 소자를 반도체 공정 기술을 이용해 칩 형태로 만든다. 광자 큐비트도 빛 알갱이가 지나가는 길을 만들 때, 다이아몬드 NV 센터 방식은 다이아몬드 웨이퍼에 질소 원자와 빈자리를 만들 때 각각 반도체 공정 기술을 써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주요 양자 강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지난 27일 동대문DDP에서 만난 양자컴퓨팅의 세계적 석학들은 이에 적극 동의했다. 찰스 베넷 전 IBM 연구원, 존 마르티니스 UC 샌터바버라 교수, 김명식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교수 등은 "한국은 놀라운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갖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양자컴퓨터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글이 2019년 10월 개발한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는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린다는 복잡한 연산 문제를 단 200초 만에 풀었다. 이같은 초고속 연산 능력은 어떤 시대를 만들까? 세계 과학계에서는 이를 ‘2차 양자혁명 시대’라고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 고도화, 신약ㆍ신물질 연구의 혁명, 에너지ㆍ우주 난제 해결, 아무도 뚫을 수 없는 암호ㆍ네트워크 기술, 초고 정밀도ㆍ민감도의 센서 개발 등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양자컴퓨팅의 초고속 연산 기능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 제조ㆍ생산 최적화를 이뤄줄 수 있다. 기능이 대폭 강해진 AI와 양자센서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 초미세 공정 설계가 가능해져 성능이 대폭 강해진 배터리 등이 등장한다. 데이터의 초고속 대용량 처리ㆍ고도의 보안이 가능해져 바이오ㆍ로봇ㆍAI 등 미래 첨단 산업의 일대 혁신이 가능해진다. 양자컴퓨터로 수십억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를 분석하면 혁신적인 질병 치료 기술ㆍ신약 개발이 아주 손쉽게 이뤄진다. 수천억개에서 조 단위 숫자의 파라미터를 처리하는 초거대 AI 지능, 인간을 닮은 휴먼로봇이 등장한다.
우주ㆍ지구ㆍ생명 탄생의 비밀을 푸는 것은 물론 자원 고갈ㆍ소행성 충돌 등 거대 이슈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컨대 양자 시뮬레이션으로 질소 고정의 원리가 규명되면 전 세계적으로 비료 생산에 드는 막대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인간의 영역을 우주로 넓혀 행성 탐사ㆍ개척, 에너지 생산 등 우주 시대가 펼쳐진다. 암호 해독, 금융ㆍ교통ㆍ전력 분배 문제 등 모든 영역에서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기존의 모든 암호체계를 풀 수 있게 되지만 어떤 수단으로도 해제할 수 없는 강력한 암호가 새로 등장한다.
한 단장은 "컴퓨터가 없었을 때의 세상과 컴퓨터가 있을 때의 세상처럼, 양자컴퓨터의 활용 분야가 많아질수록 양자컴퓨터가 없었을 때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오류 현상’이 문제다. 양자컴퓨터는 특성상 극히 적은 양의 에너지가 원자 수준에서 구동된다. 양자 상태(중첩ㆍ얽힘)를 구현하기 위해 진공ㆍ초전도 등의 상태와 특수 소재가 필요하다. 에너지ㆍ자원이 많이 들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즉 양자컴퓨터 오류의 원인은 주변의 잡음이다. 초전도ㆍ진공 상태 등 환경적 요인이나 소재 등 하드웨어 자체에서 기인한다. 최근 IBM이 오류를 완화해 실제 양자컴퓨터의 빠른 연산 속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줬다. 구글도 지난 2월 오류 정정 기술을 선보였다.
기존 컴퓨터의 트랜지스터도 초창기엔 오류가 많았지만 기술 개발 끝에 사라졌다. 오류 완화ㆍ정정 기술들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학계에선 어떻게 하면 더 오류가 없는 ‘좋은 큐비트’를 만들어 내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양자 상태를 상온ㆍ상압 상태 등에서 구현할 수 있다면 오류가 없는 좋은 큐비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화된 양자 알고리즘을 만들어 산업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큰 과제다. 초전도ㆍ진공 등으로 ‘원시 컴퓨터’ 에니악만큼의 에너지ㆍ자원이 필요하다는 현실도 극복해야 한다. 한 단장은 "기존의 사칙연산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은 양자컴퓨터에서 더 느린 만큼 특화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큐비트는 주변 장치를 제외하면 스스로는 소비하는 에너지가 매우 작기 때문에 기술 발달에 따라 소형화ㆍ저에너지 소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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