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보다 실천 어려운 글쓰기
스스로 선택하고 질문한 하루
매일 쓸 수 있는 원동력 될 것
얼마 전 이 지면에 매일 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썼다. 매일 글을 쓰는 일도, 매일 걷는 일도 중요하다. 몸과 마음과 지식의 근육을 함께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활동은 강조된다. 보다 쉬운 건 걷는 일인 듯하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하루를 바삐 살고 나면 만보 가까이 걷게 된다. 100보를 걸을 때마다 1포인트를 준다거나 만보를 걸으면 몇십 원을 준다거나 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유행한 지도 꽤 됐다. 나도 몇만 포인트가 쌓여서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에 비해 매일 쓰는 건 어렵다. 이 일은 업으로 삼는 작가들도 매일 쓰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겸연쩍은 표정을 지을 듯하다. 사실 나부터가 그렇다. 매일 걷고 있지만 매일 쓰고 있지는 않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하루가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하루보다 많다. 쓰고 기록하는 삶의 중요성이야 누구나 말하는 바지만 그렇게 하긴 힘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쓰고자 마음먹었다가도 자신이 글을 잘 못 쓴다거나, 쓸 게 없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하는 말을 하며 쓰는 삶에서 멀어지곤 한다.
우리가 매일 쓰기 어려운 이유는 능력과 여유의 부족만은 아니다. 우리는 배울 만큼 배웠고 그렇게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나 쓰는 삶의 전제조건이라는 게 있다. 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쓸 것을 만들어 내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게 대단한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데 다녀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 여기저기에 쓸 것이 묻어 있다. 그렇다면 쓸 것을 만들어 내는 삶이란 무엇인가.
매일 쓰는 삶은 매일 좋은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나로서 오늘 하루를 살아갔다면 반드시 쓰고 싶은 무언가가 생긴다. 적어도 나로서 선택한 게 하나라도 있는 하루, 작은 물음표라도 만들어내고 답해 보았던 하루. 그러한 하루는 내가 설정한 삶의 방향과 결을 같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닮아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면 타인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의 감정들도 섬세히 기록해 나가고 싶어진다. 무언가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그 하루가 타인으로 가득한 하루였다면, 해야 해서 하는 일들을 관성적으로 하고 마감한 하루였다면, 누구라도 공허해지고 만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몇만 보를 걷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들어왔다고 해도, 스스로의 선택이나 질문 없이 살아낸 하루라고 하면, 그건 그저 바빴을 뿐 정체되거나 후퇴한 하루다.
매일 쓰는 삶이란 결국 좋은 하루를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나로서 하루를 살아야 우리는 계속 글을 쓰고 자신의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며 성장할 수 있다. 타인의 틀 안에서 살아간 자신을 예쁘고 멋지고 즐거운 언어로 기록한다고 해도 그건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내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매일 쓰지 못하는 까닭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 단순한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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