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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에스컬레이터 점령한 중국산…대기업도 손 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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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에스컬레이터 90% 이상이 중국산…사고 빈번
2014년 이후 국내 제조기반 사라져
"대·중소기업 상생 가능토록 제도 개선해야"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유지보수업체 직원들이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유지보수업체 직원들이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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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인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해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9년 서울대입구역에서도 역주행 사고로 80여명이 넘어졌다. 2018년 대전역, 2014년 종로3가역, 2013년 야탑역 등에서도 같은 사고가 발생해 수십여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사고까지는 아니어도 여기저기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으로 서 있다.

韓 시장 점령한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해마다 반복되는 사고 원인으로 '중국산' 에스컬레이터가 거론된다. 저가의 품질 낮은 중국산 부품이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최강진 대한승강기협회 수석부회장(옛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국산 부품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내 에스컬레이터 대부분이 중국산으로 이뤄진 시장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부회장은 "일부 유지보수용을 제외하면 국산 에스컬레이터 부품은 거의 없다"며 "대기업은 오래전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고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제품을 들여온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이 전국 철도 각 역사에 설치한 2640대의 에스컬레이터는 전부 중국산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 지하철 1~8호선에 설치한 에스컬레이터 1827대도 모두 중국 제품이다. 부산·인천·대전 등 광역자치단체 교통공사가 운용 중인 에스컬레이터 중국산 비중도 90%가 넘는다. 에스컬레이터 구동기·제어반·구동체인 등을 유지보수용으로 생산하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국산 비율은 '0'(제로)에 가깝다. 중국에 공장을 둔 오티스, 티케이엘리베이터, 쉰들러 등 글로벌 업체의 저가 공세에 2014년 현대엘리베이터마저 국내 유일 에스컬레이터 부품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이후 제조기반이 사라졌다.

지난 8일 경기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해 시민들이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8일 경기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해 시민들이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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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대부분이 중국산이라 고장 발생시 즉각적인 부품 수급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7월 침수피해를 입은 KTX 광명역 일부 에스컬레이터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있다. 지난해 8월 태풍과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지하철 7개역에서도 한달 넘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가동을 멈췄다. 부품이 고장나면 발주 후 부품이 도착할때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탓이다. 게다가 철도나 지하철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엔 사용기한이 20년 넘은 부품이 상당수다. 이런 부품은 중국에도 재고가 없어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대기업마저 부품을 국내로 미리 들여와 쌓아두고 대처하기 어렵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건물 내 에스컬레이터 설치 면적이나 경사도 등에 따라 부품 규격이 달라 사후적으로 주문제작해 가져올 수밖에 없다"면서 "발주처인 공공기관도 예산 부담에 부품을 재고로 보관해둘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승강기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재 공공영역에서의 에스컬레이터 사업에서 거의 손을뗐다. 관급공사 입찰시 최저가를 써내는 업체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저가로는 도저히 마진을 맞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높은 인건비와 최저가 입찰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에 에스컬레이터 부품공장이 다시 들어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中企 시장 진출할 문화·제도 정비해야
최강진 대한승강기협회 수석부회장(옛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최강진 대한승강기협회 수석부회장(옛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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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에스컬레이터 유지보수만 담당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들이 제조시장에 뛰어드는 건 무리일까. 한국승강기안전공단 통계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3만9389대(무빙워크 포함)다. 건축물 고층화, 전철역 증가, 인구 고령화 등의 이유로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현재 국내 승강기시장(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휠체어리프트)은 약 4조원, 글로벌은 140조원 규모다.

최 부회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에스컬레이터 부품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우선 발주처가 제품 원가를 제대로 반영해주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변동이나 설계변경시 제조원가 품셈(법령상 공사비 선정 기준)이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 인력과 기술을 빼가는 것을 중단하고 상생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후 부품 교체 의무제를 시행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공공영역의 경우 유지보수 과정에서 부품 수명이 다해 바꿔야 한다고 조언해도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라며 “사고가 나면 업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항공기나 군수품 무기처럼 설계수명이 다한 부품은 즉시 교체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일부 교통공사가 매달 1회 실시하는 에스컬레이터 유지보수 점검과 문제 발생시 진행하는 부품의 수리·교체 업무를 각각 다른 업체에 맡기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유지관리 주체가 점검시 하자를 발견하면 즉시 부품의 수리·교체까지 진행하도록 책임보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점검과 수리를 분리하면 예산편성, 입찰, 업체선정, 계약, 낙찰업체의 자재준비, 공사착공 등의 과정에서 안전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까다로운 인증제도도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고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 3월29일 '승강기안전관리법'을 개정해 유럽의 승강기 인증제도인 'EN코드'를 도입했다. 문제는 유럽보다 인증을 받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은 8개 부품만 인증받으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과속역행방지장치 등 22개 부품을 인증받도록 했다. 최 부회장은 "유럽에 비해 인증받아야 할 부품이 많다"면서 "비표준의 다품종 소량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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