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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게장과 스시에 대한 문명사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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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음식’은 인간의 미각본능이다

유럽 문명은 장구한 세월 ‘날 음식’을 경멸해왔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에스키모(Eskimo)’라는 단어에 함축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상륙한 이래 영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모험가들이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샅샅이 탐험했다.


일부는 북극권에도 접근했다. 인도로 가는 최단 항로인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북극권에서 원주민을 만났다. 원주민들은 순록, 물범 등을 사냥해 칼로 썰어 먹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날로 먹는 원주민의 모습을 보며 백인 탐험가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백인 탐험가들은 그들을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에스키모라고 불렀다. 인종차별적 용어인 ‘에스키모’는 그렇게 400년 이상 쓰였다. 나도 뭘 모를 때는 에스키모라고 말했다. 이제는 누구도 북극권에 사는 몽골리안 원주민을 이누이트(Inuit)라고 지칭하지, 에스키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누이트 가정집에서 얼린 악틱차가 도마위에 올려진 모습. 사진=조성관 작가

이누이트 가정집에서 얼린 악틱차가 도마위에 올려진 모습. 사진=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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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4년 4월, 캐나다 북극권 이누이트(Inuit) 자치주 누나부트(Nunavut)를 보름 동안 취재한 일이 있다. 팽너퉁의 이누이트 가정에서 숙식하며 그들의 생활 습관을 들여다보았다. 이누이트 가정에서는 사냥한 순록(caribou)과 낚시로 잡은 악틱차(artic char 연어과의 민물고기)를 날로 먹기도 하고 익혀서 먹기도 한다. 누나부트의 주도인 이캘루이트 식당에 가면 순록살과 악틱 차를 ‘쿨링’이라는 이름으로 살짝 얼려서 판다. ‘날고기 섭취’는 이누이트의 오랜 생존방식이었다. 신선한 야채를 먹기 어려운 환경에서 그들은 날고기를 통해 부족한 비타민C를 섭취한다.


누나부트 이캘루이트의 한 식당에서 파는 캐러부(왼쪽)와 악틱차 회. 사진=조성관 작가

누나부트 이캘루이트의 한 식당에서 파는 캐러부(왼쪽)와 악틱차 회. 사진=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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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의 문명사적 의미


미국에 ‘날 음식’을 전파한 나라는 일본이다. 그전까지 서구인은 날것으로는 굴, 오이스터만을 먹었다. 다른 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본인이 뉴욕 맨해튼에 스시(壽司) 레스토랑을 개업하면서부터 미국인은 날음식에 조금씩 눈을 떠갔다. 1963년 맨해튼 52번가 E. 재팬타운에 일본식당 카와후쿠(川福)가 문을 열었다. 카와후쿠에서는 스시를 포함한 일본 전통음식을 내놓았다.

일본계가 주로 찾던 스시 레스토랑이 뉴욕시 전역으로 퍼져나간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일본의 국력과 연관성이 깊다. 일본의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뉴요커들은 자연스럽게 경제 강국인 일본의 음식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둘째는 뉴욕이라는 공간적 환경이 갖는 차별성이다. 뉴욕은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로 불리는 미국의 특징을 압축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민족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뉴요커들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민족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스시도 처음에는 이렇게 여러 민족 음식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마지막은 건강한 음식에 대한 뉴요커들의 욕망이다. 패스트푸드로 대표되는 가공 음식에 대한 반감으로 신선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찾는 과정에서 ‘날 음식’이 그 욕망을 충족시켰다.


오마카세로 나온 스시. 사진=조성관 작가.jpg

오마카세로 나온 스시. 사진=조성관 작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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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가 월가에 뿌리를 내린 결정적인 요인은 고급화 전략이다. 월가의 고액 연봉자들이 고급(high-end) 스시 레스토랑을 드나들면서 스시 레스토랑에 출입하는 것은 곧 성공의 증표가 되었다. 카운터에 앉아 일본어로 스시를 주문하고 오마카세에 나오는 스시 종류를 일본어로 말할 줄 아는 것이 교양있는 미식가의 기준이 되었다. ‘무엇을 먹느냐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스시는 곧 성공을 의미했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수천 년 동안 ‘날 것’을 경계하는 집단 무의식을 공유해온 백인들이 갑자기 ‘날 것’을 즐기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합중국을 구성하는 50개 주 중에서 바다에 면한 주는 21개 주. 와이오밍, 네브라스카, 캔사스, 아이오와, 미주리 등과 같은 중부 내륙지방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생선을 냉동 형태로 처음 접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튀겨 먹었다. 호수나 강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다 해도 언제나 튀기거나 끓여서 먹었다.


주태국 미국대사를 지낸 에릭 존은 현재 보잉코리아 사장이다. 미국 중부 내륙지방 출신인 그는 부산 미국영사관에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의 신문 연재칼럼을 읽다가 ‘광안리에서 생선회를 처음 먹으며 한식에 눈을 떴다’라는 제목에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도 회를 먹을 때면 부산 주재 미국 영사관 직원들과 광안리 수산시장에서 첫 만찬을 하던 날이 떠오른다. 수조에서 직접 횟감을 고르자 아직 눈을 느리게 껌뻑이는 생선 대가리와 함께 곧 거창한 활어회 한 상이 차려졌다…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한 생선을 처음 접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는 에릭 존의 글을 되새김질한다. 자신의 미각 본능에 존재하지 않았던 활어회 맛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미각 본능의 한쪽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잊혔던 것이 새롭게 눈을 떴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 앞에서 우리는 인류학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현생 인류의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호미닌(hominin), 작은 사람족이다. 아프리카 동부에 살던 호미닌이 진화한 것인 호모 사피엔스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에서 호미닌의 유전체가 전달되었다.


불의 발견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시기라는 것이 인류학의 정설이다. 불의 발견으로 인류는 비로소 문명의 세계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몸을 따뜻하게 했고 사냥한 것을 익혀 먹으면서 인간의 수명이 조금씩 늘어났다.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춰볼 때 ‘날것을 먹은 시간’이 ‘불에 익혀 먹은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호미닌이 호모 사피엔스에 전달한 유전체(DNA) 중에 날 것에 대한 미각이 포함되지 않았을까.


간장게장은 왜 중독성이 강할까?


한식에서 ‘날 음식’의 대표는 게장과 육회다. 나는 육회를 좋아하는 편이다. 육회가 미뢰(味?)에 닿을 때마다 미묘한 흥분이 일곤 한다. 핏빛과 비릿함이 원초적 욕망을 일깨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내 미각에 수렵 생활의 미각 본능이 잠재한 까닭이었다. 인간의 모든 원초적 욕망에는 비릿함이 서려 있다.


식당에서 나오는 육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식당에서 나오는 육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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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와 게장 중에서 중독성이 강한 것은 단연 간장게장이다. 게장은 한번 맛을 들이면 여간해선 끊기 어렵다. 딸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딸이 귀국하면 항상 간장게장을 가장 먹고 싶어 한다. 내가 간장게장을 좋아하지 않아 집에서 게장을 내놓은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딸은 한국에 오면 간장게장부터 찾는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이 군 복무 중 첫 휴가를 나왔을 때다.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아내가 묻자 아들은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간장게장. 사진=조성관 작가

간장게장. 사진=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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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간장게장은 오랜만에 집에 오는 젊은 세대의 솔 푸드가 되었을까. 도대체 간장게장이 무엇이길래. 서울 마포에는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이곳은 일본 주재원들이 단골로 찾는 식당이다. 서울 근무를 끝내고 돌아간 일본인들이 서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간장게장이라고 한다. 그 중독성 맛을 잊지 못해 서울을 다시 찾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연출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간장게장 마니아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반드시 한 끼는 간장게장을 먹는다.


게장은 참으로 오묘한 음식이다. 익히지 않았으니 날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100% 날 것은 아니다. 간장으로 절여서 날 것 특유의 비린 맛을 없애버려서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큰기와집은 간장게장 전문집이다. 간장게장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국내 유일의 식당이다. 간장게장 3대인 한영용 사장은 “인간의 미각에는 날 것에 대한 본능이 잠복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 최초로 먹는 음식이 모유다. 어머니 젖은 날 것이다. 인간은 본능으로 날 것을 기억한다. 왜 석전대제(釋奠大祭)에 올라가는 음식이 생음식인지를 생각해보라. 모든 문명권의 제사상에는 날 것이 올라온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음식이 신성한 것이라고 여긴 결과다.”


이 말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미각 본능을 일깨운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시 스시(壽司)로 돌아가자. 스시는 날 것과 익힌 것의 결합이다. 자연 그대로의 날 것과 불로 익힌 것의 절묘한 조화다. 스시를 간장에 찍어 먹을 때 우리는 왜 행복감을 느끼나. 그것은 원시적 미각과 문명적 미각의 하모니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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