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제18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열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 고택.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3중주 1악장과 2악장 연주 사이, 먼 데서 ‘까악’하는 소리가 났다.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은 까마귀 소리가 난 방향을 살짝 응시했다가 이내 싱긋 웃고는 연주를 이어갔다. 앞서 마우로 줄리아니의 ‘플루트와 기타를 위한 그랜드 세레나데’ 연주 때에는 이날 관객을 위해 마련한 음료가 햇빛에 뜨거워져 ‘펑’하고 터지기도 했다. 객석이 웅성거렸지만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에 집중했다.
야외 공간인 윤보선 고택에서 열린 클래식 연주회는 여느 콘서트홀 공연에서의 연주와 분위기가 달랐다. 통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같은 전용홀에서 이뤄지는 클래식 공연에서는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한 치의 소음도 허용되지 않는다. 겨울철에는 패딩 입은 관객이 배척 대상이 되기도 한다. 패딩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이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작은 소음 때문에 실랑이하는 관객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윤보선 고택 연주에서는 이와는 다른 여유와 너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주는 진정한 평온이란 바로 이런 여유와 너그러움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난 3월 국내 개봉했던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주인공 콜름(브렌단 글리슨)의 대사 ‘한 줌의 평온’을 떠올리면서…. 영화 속 콜름은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그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선술집에서도 평온하고 즐겁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콘서트홀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에 거부감을 갖는 관객들도 있다. 이런 관객들을 위해 관객과 연주자 모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는 야외에서의 공연이 더 많아진다면 클래식 음악이 좀 더 대중화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윤보선 고택처럼 평소 접근이 쉽지 않은 문화재 시설을 활용한다면 대중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이다. 윤보선 고택은 사적 제438호다.
마포문화재단은 매년 가을 클래식 음악 축제를 한다. 마포 지역 여러 곳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며 지역 문화시설도 알린다. 2020년에는 공민왕 사당 옆에 있는 한옥 문화공간인 ‘광흥당’에서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교수가 연주했다. 당시 광흥당이 어떤 곳이냐는 문의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공민왕 사당은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도 문화재 시설을 활용한 문화 활동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석조전 음악회는 1910년대 활동한 피아노 연주자 김영환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고종을 위해 연주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2015년 시작됐다. 윤보선 고택 음악회만큼 입장권을 구하기 어려운 음악회로 꼽힌다. 오는 28일 예정된 석조전 음악회 공연도 입장권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됐다
문화재 시설 개방은 훼손 위험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닫아두기만 한다면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사랑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문화재를 활용한 공연 확대는 연주자들에게 더 많은 무대 기회를 주고, 대중에게 평소 몰랐던 문화재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병희 문화스포츠 부장 nu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실버타운 실패' 후 사업자도, 노인도 등 돌렸다[...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