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육·식물성 대체육 본격 상품화
기후·식량·자원 위기 해결 수단 급부상
2040년대 육류 시장 절반 이상 차지
"기후ㆍ식량ㆍ자원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최근 실험실에서 생산한 배양육 등 대체육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유럽ㆍ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무풍지대'지만 앞으로 20년 내 육류 시장의 절반 이상을 배양육과 대체육이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전 세계 식품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미래 바이오 기술인 배양육 등 대체육 기술을 알아보자.
대체육은 말 그대로 기존 대규모 축산 시설을 통해 사료ㆍ목초를 먹여 생산한 전통 육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육류를 말한다. 이중 배양육(cultured meat)은 동물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인공 배양해서 만들어낸 육류다.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즉 'Lab grown Meat'라고 불리기도 하고 청정하다는 뜻의 '클린 미트(clean meat)'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식물성 대체육도 있다. 식물성 재료로 고기를 대체할 수 있도록 맛과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콩단백이나 밀 글루텐과 같은 식물성 원재료를 이용해 만든다. 대체육은 '콩고기'라는 말로 불리기도 했다. 즉 채식주의자나 종교적ㆍ건강상 이유로 기존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기호 식품 정도로 여겨졌다. 맛과 질감, 냄새 등도 '흉내만 낸'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 새 기후 변화와 국제 정세 불안, 자원 고갈 등의 현상이 거세지면서 아예 전통 축산업 생산 육류를 통째로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대규모 방목ㆍ공장식 사육이나 도축ㆍ가공 과정에서 축산업이 초래하는 환경 파괴ㆍ탄소 발생량을 최소화하고 토지도 아낄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인도적ㆍ도덕적 이유로 기존 육류 섭취를 꺼리기 시작한 최근의 소비자 트렌드를 만족시킨다. 퇴비ㆍ비료ㆍ물 등과 도축ㆍ운반 등에 투여되는 막대한 자원ㆍ인력도 절약할 수 있다. 영국의 배양육 업체 '잇 저스트'의 조시 테트릭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BBC에 출연해 "위생적이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육류를 생산할 수 있다"면서 "기존 축산업보다 탄소 배출량과 물ㆍ토지 사용량을 95%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2020년 핀란드 헬싱키대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푸드(Nature Food)에 배양육 또는 곤충 섭취가 전통 육류보다 물 소비 84% 감소, 토지 사용 87% 감소, 온실가스 배출 83% 감축 등 환경 파괴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 정세 불안ㆍ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의 극복 수단도 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문제다. 밀 가격은 지난해 3월 1t당 사료용 333달러, 제분용 448달러로 전년 대비 100~200달러 가까이 급등했다. 옥수수도 사료용 324달러, 식용 348달러로 100달러 이상 치솟았고, 콩도 사료용 493달러, 제분용 600달러로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후 다소 안정화되긴 했지만 식량 자급ㆍ자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더 커졌다.
서진호 서울대 식품생물공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24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 토론회에서 "(대체육 기술은)식품 산업의 ESG(환경ㆍ사회ㆍ거버넌스)에 핵심적이며, 단가가 높은 식품의 원료 소재를 국내에서 생산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고 식품 원료 자급률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변화 대응 저탄소 기술, 안정적 식품 원료 공급, 소비자들의 비동물성 식품 선호 등의 측면이 강조되면서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배양육ㆍ대체육 기술 연구개발과 상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2040년 세계 전체 육류 시장은 약 1조8000억달러(200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인데, 이중 대체육이 6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양육 35%, 식물성 대체육 25% 등 기존 육류보다 더 많이 소비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미국의 임파서블 푸드가 최근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 시장 판도를 뒤엎은 대표적인 회사다. 콩의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정밀 발효해 소고기의 '피 맛'을 그대로 살린 대체육 햄버거 패티를 개발해 기존 업계 최강자였던 비욘드 미트를 추월했다. 그뿐만 아니라 달걀, 가죽, 바닐라향, 효모 생산 기름, 참치 등 수산물 단백질 등 정밀 발효 기술을 활용한 대체육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형편이다. 서 교수는 "정밀 발효란 미생물을 최적화해 식품 구성 요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향료 등 비타민 등 모든 종류의 분자를 생산하는 기술"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기술 R&D와 산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산ㆍ학ㆍ연ㆍ정 협의체 구성 및 활동·생산시스템(파운드리) 구축, 정밀 발효 이니셔티브 예비타당성 조사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배양육 분야도 최근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스테이크용 등심 등 다양하고 질 높은 고기를 보다 싼값에 만들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동원한 다학제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심장 근육 재생을 위해 개발된 재생 의학 기술과 생물 고분자 소재 기술을 활용한 3D 프린팅 기법, 대량 배양을 위한 바이오리액터(Bioreactor) 기술 등이 총동원되고 있다. 우선 배양육의 핵심은 어떤 세포를 쓰냐인데, 근위섬세포ㆍ배아줄기세포ㆍ유전자 변형 세포 등이 쓰인다. 장단점이 뚜렷하고 나라별 규제도 제각각이다. 특히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어떤 배양액을 만들어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배호재 건국대 KU융합과학기술원 교수는 같은 토론회에서 "배양액의 성분은 특급 비밀로 기존 혈청 프리 배양액의 경우 500㎖당 20만~60만원 이상일 정도로 비싸다"면서 "2030년대 초반까지는 배양액 가격을 낮춰 기존 육류와 경쟁할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식물성 대체육에 배양육을 합쳐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하이브리드 미트'가 최근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또 배양 과정에서 모양을 갖추기 위한 지지체 등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과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대량 배양하기 위한 대용량 바이오리액터 기술도 필수다. 배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은 배양육이나 대체육에 대해 새로운 종류의 식품으로 인정해 따로 법체계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규제가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다"면서 "배양육도 맛이 있고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하므로 정밀 발효 기술의 도입 등 적절한 기술이 개발 중이며, 규제 문제도 빠른 상용화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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