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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의 속터뷰]엄홍길 "어느 순간 산 아래 세상,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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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에 "엄홍길은 산이었다" 써 달라
가장 보고 싶은 이는 올 초 세상 떠난 어머니
네팔에 휴먼스쿨 16개 완공, 병원도 지어

[소종섭의 속터뷰]엄홍길 "어느 순간 산 아래 세상,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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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는 건 불확실성에의 도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며 눈폭탄을 쏟아낸다. 예보와 달리 강풍이 휘몰아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도 이와 같다. 변수가 많아 안정적으로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와 등반은 요즘 닮은꼴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엄홍길휴먼재단(휴먼재단. 이사장 이재후)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왔다 갔다 했다. 상임이사 엄홍길 대장이 다음 날(24일) 네팔로 출국하기 때문이다. 바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인터뷰를 하려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 대장의 환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고민이 사라졌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6좌 완등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영웅이 거기에 있었다.

엄 대장은 올해 큰 아픔을 두 번이나 겪었다. 1월에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4월에는 휴먼재단이 창립한 2008년부터 사무처장을 맡아 15년 간 봉사했던 홍옥선 사무처장이 등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삶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고,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로 나타난다. 5월 23일 오후 4시,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엄 대장에게서 그런 게 느껴졌다.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엄홍길 대장을 서울 삼청동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엄홍길 대장을 서울 삼청동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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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엔 무슨 일로 가나. 휴먼스쿨 건립 때문인가.

아니다. 2015년 네팔에 지진이 났었다. 사망자가 9천여 명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엄청났었다. 그때 대한적십자사 긴급구호팀 대장을 맡아 현지에 급파돼 보름 정도 구호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귀국 전날 휴먼재단 네팔지부 자문위원들과 식사하고 차 한 잔 마시는데 한 참석자가 에베레스트 지역에 있는 사찰들도 피해를 입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급하게 헬기를 타고 현장에 가보니 진짜 심각했다. 마음에 계속 걸려서 그 자리에서 재건을 약속했다.


그래서 절을 지어줬나.

착공식 할 때 앞산에 무지개가 떠서 다들 신기해했다. 한국 불교계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지었다. 소문이 나니 다른 절에서 동자승들이 생활하는 기숙사를 지어달라고 요청해 조계종중앙신도회와 협업해 지어줬다. 이번에 네팔에 가는 것은 이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휴먼재단의 정기 등산 활동과 네팔에 학교 지어주기 그리고 각종 강연, 방송 출연 등을 하며 지내고 있다.

강연은 얼마나 자주 하나.

최근에도 대구 북구청에서 강연했다.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다 할 수가 없다. 우선 일정이 맞아야 하고 꼭 내가 해야 하는지, 의미가 있는지 등을 따져 결정한다.


강연 주제는 주로 무엇인가.

8000미터 16좌에 도전할 당시 생사를 넘나들며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느낌 등을 주로 얘기한다. 현장에서 체험했던 불굴의 도전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듣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다.


강연하다 보면 ‘아,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감이 오나?

나는 이론으로 배워서 남한테 전달하는 게 아니지 않나. 현장에서, 진짜 목숨을 걸고, 생사를 건너면서 체험했던 것을 전달한다. 임팩트가 있고 생동감이 있어서인지 듣는 분들이 느끼는 감동 같은 게 더 큰 것 같다. 특히 군부대 같은 곳에 가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엄홍길 대장은 청소년들과 교감하는 데도 열심이다. 강북구 청소년희망원정대를 11기 발대식 장면. 출처=엄홍길 휴먼재단

엄홍길 대장은 청소년들과 교감하는 데도 열심이다. 강북구 청소년희망원정대를 11기 발대식 장면. 출처=엄홍길 휴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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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소년 희망원정대 발대식도 했다고 들었다.

이번이 11기다. 강북구 청소년희망원정대다. 서울 강북구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매달 한 번씩 산에 간다. 산을 통해서 호연지기를 키우고 도전 정신, 극복과 인내력, 협동정신을 키워주려고 노력한다. 1년 지나 수료할 때쯤이면 아이들이 처음과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낀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긍정적 효과가 크다. 이론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미래 세대에게 희망과 도전 정신을 심어주려고 하고 있다.


엄 대장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다가 여러 차례 생사를 넘나들었다. 평소 “하늘이 나를 살려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왔는데, 자신의 쓰임새가 뭐라고 생각하나.

히말라야 16좌 등정이라는, 간절히 염원하고 바랐던 것을 성취했다. 나도 거기 묻혀야 할 사람인데…. 신이 내 꿈을 이뤄줬다. 신이 ‘너는 아직 때가 안 됐다. 너는 할 일이 남아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줬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 받은 것을 100% 나눠 주며 살아라’라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히말라야가 준 깨달음이라고 봐야 할까.

그렇다. 깨우침을 받은 셈이다. 나 혼자만 만끽하면서 살지 않겠다, 살아 있으면 나누고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전에는 정상만 보고 정신없이 올라갔고 끝나면 그다음 산에 가고 그랬다. 어느 순간 산만 보이는 게 아니고 산 아래의 세상이 보였다. 사람들의 세계가 보였다. 그전에도 마을을, 사람들을 거치면서 산에 올랐는데 그때는 깨우침 없이 다녔다.


휴먼재단 사무실에는 엄 대장과 관련한 각종 패와 사진 등이 많이 전시돼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휴먼재단 사무실에는 엄 대장과 관련한 각종 패와 사진 등이 많이 전시돼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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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쿨을 세운 것도 그 때문인가.

맞다. 전에는 무조건 산만 생각하고 산에 몰입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보이게 되고 그 내부 사람들의 세계가, 그 세계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보였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꿈도 없이, 부모로부터 대물림 되는 가난이라는 열악한 삶의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옷을 주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이지 지속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 배워야 된다. 깨우쳐야 한다. 그래서 그 간절함으로 2008년부터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팔에 학교를 몇 개나 지었나.

16개를 완공했다. 3개는 공사를 하고 있다. 인기가 높아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일부 증축 공사도 하고 있고 교사가 부족해 휴먼재단에서 직접 13명의 교사를 채용했다. 등반을 하다 다친 셀파 등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도 하나 지었다. 우리나라 팀하고 등반하다 사고를 당한 네팔인의 아이들 9명에게 매달 장학금도 주고 있다. 그래서 제가 후원금을 많이 모아야 한다.(하하)


네팔 동쪽 끝에 있는 푸룸부 휴먼스쿨. 네팔에 12번째로 완공한 학교이다. 출처=엄홍길 휴먼재단

네팔 동쪽 끝에 있는 푸룸부 휴먼스쿨. 네팔에 12번째로 완공한 학교이다. 출처=엄홍길 휴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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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개나 더 지을 생각인가. 계획이 있나.

계획은 없다. 원래는 히말라야 16좌를 등정했으니 16개 정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작할 때는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16좌 등정도 마찬가지다. 산이 좋아서, 히말라야가 좋아서 하다 보니까 경험이 쌓이면서 할 수 있겠다 싶어 도전했던 것이다. 휴먼스쿨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상태에서 시작한 게 아니다. 돈도 없이 시작했다. 과연 할 수 있을지, 몇 년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진전이 됐다. 하다 보니 뜻밖의 후원자들이 튀어나왔다.


등산 인구가 늘었다. 특히 2030세대들이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에 좋고, 국가적으로는 의료비를 아낄 수 있어서 좋다. 국민이 건강하면 국가 자체가 건강해지는 것 아닌가.


등산을 좋아하는 2030세대에게 한 마디 한다면?

우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올라갈 때 산과 교감도 통하고 힘이 들어도 자신한테 좋은 효과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남 때문에 올라가면 오히려 독이 된다. 또 산에 오를 때는 항상 겸손한 마음,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절대 자신의 체력을 오만하지 말고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 자연 자체가 주인이다. 잠시 남의 집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지 우리 집이 아니다.


늘 겸손한 마음,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욕심을 부리는 순간, 자만심을 갖는 순간, 사고로 이어진다. 욕심을 부리면 어려운 것도 쉬워 보인다. 히말라야의 경우 위험한 구간인데도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못하고 그냥 막 오르다가 눈사태나 낙상을 당할 수 있고, 히든크랩에 빠질 수도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겸허해야 한다. 등산을 할 때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다.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엄홍길 리더십’의 핵심은?

원정을 하게 되면 대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대원들은 각자의 역할만 열심히 하면 되지만 대장은 전체적인, 구체적인 걸 다 봐야 한다. 그래야 모든 걸 집행할 수 있고 진행할 수 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냉철해야 하고 판단력도 빨라야 한다. 그다음에 1순위가 안되면 그걸 대처할 수 있는 3순위 정도까지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사전에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가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바로 적응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 다음 단계에 대처해야 한다. 대처 능력, 판단력이 빨라야 하고 희생 정신도 있어야 한다.


서울 삼청동 휴먼재단 사무실 문에 붙어 있는 환영 포스터.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서울 삼청동 휴먼재단 사무실 문에 붙어 있는 환영 포스터.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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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리더들에게 필요한 리더십 같다.

그런 측면이 있다. 경제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언제든 올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 아닌가. 그러니 예비적인 부분을 생각해 대안을 항상 몇 개 갖고 있어야, 대체할 수 있는 걸 준비해야 한다.


바쁘게 살다보면 힘들어서 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맞다. 휴먼재단이 고정자산이 없다. 예산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쓰는 게 아니다. 모금을 해야 한다. 들어오면 그것 갖고 또 바로 집행을 해야 한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하려면 돈이 들어가니 늘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전화 갖고는 안 돼 얼굴 보고 식사하고 술도 한 잔 해야 한다. 재단일 말고 개인적으로 먹고 사는 일도 해야 한다. 정신이 없다. 그런데도 전화해도 잘 안 받더라 이런 얘기 들으면 서운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심리적인 압박이 많다. 그게 스트레스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

네팔에 가면 뭔가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실체가 있고 거기에서 아이들이나 학부형,선생님들이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걸 보면 에너지가 샘솟는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돌아온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

(엄 대장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올 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84세인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1999년 내가 히말라야 원정에 나서기 직전에 돌아가셨다. 장남인데 집안일에 신경을 안 쓰고 산에만 미쳐서 돌아다니니 아버지는 나를 못마땅해 했다. 어머니는 달랐다. 항상 내 편이었다. 당시 난 마음속으로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렇게 불효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성공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저를 인정해 주시고 미친 듯이 산을 다닌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생각하며 산을 다녔다.


아버지는 내가 기록을 세우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반면 어머니는 내가 이룬 성과를 보셨고 기뻐하셨다. 당신들이 살아계실 때는 감사한 마음, 고마움은 가졌지만 존재에 대해서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하는 간절한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더 잘해 드릴 수 있었는데 내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송강 정철의 시가 너무 절실하게 느껴진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올해 홍옥선 처장도 떠났고…. 여러 가지로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 묘비명에 뭐라고 써주기를 원하나.

‘엄홍길은 산이었다’이다. 그걸로 전체를 다 설명하는, 산처럼 품어주고 모든 걸 다 받아준 사람. 높은 산, 낮은 산, 둘레길 등 차이는 있지만 산은 남녀노소나 연령, 계층을 넘어, 오는 사람들은 다 받아준다. 한 방울의 물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 강을 거쳐 바다로 가면 바다는 모든 걸 다 받아주고 포용한다. 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산은 늘 새롭다. 매일 가는 산도 갈 때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분이 든다. 답답하고 막막할 때 산에 가면, 자연 속에 있으면 그냥 다 씻어준다. 안 풀리던 실타래가 풀리고 어떤 방향을 찾게 되더라.


1999년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을 때의 엄홍길 대장. 출처=엄홍길휴먼재단

1999년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을 때의 엄홍길 대장. 출처=엄홍길휴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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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이다.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외국어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 등정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산악대상, 만해대상, 체육훈장 청룡장 등 숱한 상과 훈장을 받았다.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발족해 네팔에 휴먼스쿨을 짓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 희망원정대, 청소년 클라이밍 대회 등 청소년 활동에도 열심이다. 저서로는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엄홍길의 약속> 등이 있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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