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계엄군과 병원으로 후송을 도운 시민군, 치료해준 의사가 43년 만에 한 자리에서 만났다.
24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1980년 5월 당시 부상을 입은 계엄군 20사단 박윤수(당시 상병)씨와 인근 병원으로 후송을 시켜준 시민군 신봉섭(당시 택시운전사)씨, 계엄군을 숨겨주고 치료해준 의사 정영일씨가 만났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왔던 박윤수씨와 그를 치료해준 의사 정영일씨가 당시 치료했던 그 병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이날 만남은 조사위의 계엄군에 대한 아래로부터 상향식 전수조사 과정에서 박윤수씨의 증언 확보와 군 기록 등 문헌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또한 당시 상황에 대한 다수의 증언이 교차 확인되면서 시민군과 의사의 신원까지 추가로 확인됐고 최종적으로 계엄군 박윤수씨의 만남 요청에 따라 성사됐다.
1980년 5월 21일, 20사단 61연대 대대장 당직병이였던 박윤수씨는 대대장 차량을 타고 서울에서 광주로 이동했다. 광주톨게이트를 지나 광주산단 진입 무렵 인근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당했다.
차량을 빼앗기고 정신을 잃은 박윤수씨를 둘러싼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설득해 병원으로 보내 치료가 먼저라고 나선 이가 바로 택시기사 신봉섭씨다. 본인의 병원 위층에 위치한 자택에 박윤수씨를 숨겨주며 치료를 해줬던 의사가 정영일씨였다.
이후 응급치료와 안정을 취한 계엄군 박윤수씨에게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며 사복으로 갈아입혔고 그는 무사히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 61연대 본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한편, 20사단 전투상보 기록에 따르면 ‘1980년 5월 21일 오전 9시 30분에 박윤수씨가 광주톨게이트에서 행방불명됐다’는 내용과 당시 대대장의 1996년 서울지방검찰청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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