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기본계획 재구조화' 초안 7월 발표
여성과학인 육성 지원이 저출산 대책?
"실제 쓴 돈 적어, 저출산 예산 더 늘려야"
정부가 출산장려 효과가 미미한데도 저출산 대책으로 분류돼 온 ‘거품 예산’을 덜어낸다. 지난해 저출산 극복예산은 51조7000억원이었는데 이 중 상당한 금액이 공식 저출산 예산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결과가 발표되면 향후 저출산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같은 방향을 담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의 초을 오는 7월 발표한다. 기본계획은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5년 단위로 만들어 시행하는 제도다. 2020년 말 문재인 정부에서 4차 기본계획을 수립해 2025년까지의 계획이 잡혀있지만, 이를 도중에 수정하겠다는 뜻이다. 수정 작업은 지난해 정부 부처 예산 중 저출산에 묶여있던 항목을 검토해 재분류하는 게 골자다. 출산율 제고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예산을 솎아낸다는 건데 아시아경제의 추정으로는 그 규모만 지난해 기준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출산장려 효과가 미미한데도 저출산 대책으로 분류돼 온 ‘헛돈 예산’을 30조원가량 덜어내기로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을 오는 7월 발표한다. 사진은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에 참석한 쌍둥이와 삼둥이 어린이들의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저출산 예산에서 빠지는 대표적인 사업이 교육부의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사업’이다. 노후 학교 건물을 미래형 학교로 바꾸는 사업인데 저출산 대책에 포함돼 예산 1조8000억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출산 예산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던 주거지원·대출 사업도 검토를 거쳐 상당 부분 제외될 예정이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 중 약 46%가 주택공급과 대출지원에 쓰였다. 이밖에도 산학연 협력선도 육성사업, 여성 과학인 육성지원, 군무원 장교 인건비 증액, 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해소 등의 예산이 제외된다.
저고위가 저출산 예산의 분류작업에 돌입한 건 저출산 대책이 별다른 효과검증 없이 우후죽순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대응에 투입한 돈은 280조원에 달한다. 2조1000억원으로 시작한 예산은 지난해 51조7000억원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절반가량이 주거지원 예산으로 관련성과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컸다. 반면 임신·출산·돌봄 직접예산은 GDP 대비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29%보다 오히려 부족했다.
280조 쓰고도 못막은 저출산…따져보니 무늬만 대책
16년간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백화점식 대책이 남발하면서 출산율은 바닥을 찍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년보다 0.03명 감소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다. 2020년 OECD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 1.5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회원국 중에서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저출산 대책에 헛돈을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컸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8일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브리핑을 받은 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 달 28일 ‘2023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도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라면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저출산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고위는 저출산 대책의 검증이 완료되면 필요한 부문에 확실하게 예산을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고위 관계자는 “300조원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 왜 저출산 예산을 늘리느냐는 여론이 있다”면서 “불필요한 예산을 걷어내고 보면 실질적으로 쓰는 돈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효성이 없는 대책을 우리가 먼저 밝혀내야 앞으로의 예산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저출산 대응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예산을 더 투입할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다만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서 제외한 사업도 당분간 비슷한 수준의 예산투입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저출산과 관련성이 떨어질 뿐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도 많은데, 갑작스레 예산을 줄이면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출산 극복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쓰겠다는 정부의 기조가 반영될 것”이라면서도 “이번 재분류로 특정 사업의 예산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정부는 기본계획과 관련된 연구용역이 끝나는 대로 논의를 거쳐 재구조화 방안을 오는 12월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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