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같은 일반인은 이길 수 없는 판 증명"
가상화폐 투자 10명 중 5명이 이상이 MZ
공정성 민감한데 "가상화폐·주식도 불공정"
"김남국 의원과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사태를 보면 허무함 밖에 없습니다. 분노는 하지 않아요. 원래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상화폐와 주식도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우리같은 일반인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판이라 생각합니다."
'SG증권발 주가폭락'와 '김남국 코인 사태' 등 연이은 투자시장 교란 사태에 2030 청년들이 허탈해하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최근 집값 폭등과 취업난 등이 겹치면서 투자를 신분상승의 탈출구로 생각해 가상화폐와 주식에 투자했지만, 최근 몇 년간 투자시장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본 세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들이 대안으로 생각했던 가상화폐와 주식도 결국 기득권이 유리한 시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더욱 큰 분노를 보내고 있다.
21일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세대는 하나같이 연이은 투자시장 교란 사태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이들은 "애당초 투자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냐"며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직장인 황모씨(31·남)는 "2021년부터 코인에 2000만원 투자하다 현재 반 토막이 났다. 일확천금을 노리려다 이렇게 됐다"며 "공직자나 연예인들은 사전정보나 시세조종으로 이익을 보는 것을 보면 허무하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판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이제 화조차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김모씨(31·여)도 "(사태의) 피해자 대부분이 2030인 또래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공정에 분노보다는 황당하고 어이없을 뿐"이라며 "늘 그랬듯 뒤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다 해 먹고 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김 의원에 대해서는 비슷한 연령대의 정치인이라 허탈감이 더 큰 모습이었다. 플랫폼 기업에 근무중인 김모씨(34·여)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코인 거래를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건 고위층으로서 고급정보를 사전에 알고 거래한 건 아닌지 의문점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 그 뒤에도 말이 계속 바뀌고 의정활동 중에서도 코인거래를 했다는 기사를 보니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투자금 수십억을 어디서 구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의원의 투자 문제를 놓고 여야가 진영을 나눠 극한 대립을 하는 모습은 2030에게 더욱 허탈감을 안기는 요소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씨(26·여)는 "김 의원의 해명 또한 이해가 하나도 안 가고, 서로 책임을 놓고 다투는 국회의원들의 말에 더 신뢰를 잃었고 정치 불신하는 마음마저 생겼다"며 "이런 사태를 보니 결국 나 같은 회사원은 투자했어도 정보 수준을 못 따라가고 결국 다 잃었을 것 같다. 오히려 코인이라는 것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진 것 같다.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투자 수익으로 검찰에서 추징보전 한 금액만 2642억원에 달하는 SG사태에도 냉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초년생인 박모씨(25·여)는 "주식에 조금 투자했던 경험이 있지만, SG증권 사태에서 언급된 거래방식은 매우 생소한 방식"이라며 "도리어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있는데, 어디까지가 조작으로 인한 피해자인지 아니면 모두가 가해자인지 경계와 기준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2030이 겪는 허탈감은 이들이 최근 투자시장에서 돈을 잃은 대표적인 세대이기 때문으로 읽힌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자산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총 22조원으로 전년 말 대비 31조원가량 감소한 53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총 558만명 가운데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비중은 55%에 달한다. 코인 투자자 2명 중 1명이 MZ세대인 꼴이다.
주식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들어 코스피는 속절없이 추락한 바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2030 투자자가 유가증권 시장의 41%를 차지했다. 지난해 하락장에서 손실을 본 이들 가운데 2030세대가 많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투자시장 교란 사태들이 청년들의 노력하려는 의지조차 꺾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투자 시장에 대한 불신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삶을 발전시키기 위한 동기 부여가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높아진 부동산 가격에 내 집 마련의 마지막 희망으로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 2030들이 몰렸던 부분이 있다"며 "어떻게 해도 집조차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기에 박탈감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덧붙였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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