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돌봄영역 별도법 분리
간호인력 처우개선 명문화
尹대통령 거부권은 변수로
간호계의 숙원이던 간호법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70여년 만에 의료체계가 대폭 달라지게 됐다. 기존에는 의료법 내에서 모든 의료행위는 물론 간호·간병 등 돌봄의 영역까지 규정했으나, 이를 별도의 간호법을 통해 규율하게 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업무와 처우, 자격요건 등도 간호법에 포함하고 있는 만큼 간호·돌봄의 영역이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다.
72년 만에 의료체계 대변화
우리나라 현 의료법의 모태는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현 의료법으로 이어졌으나, 기본 구조는 유지돼왔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득부터 자격요건 등 기본적인 내용부터 의료행위 전반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통적 의료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간호법 제정은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간호와 돌봄의 영역을 기존 의료로부터 독립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현실화한 고령화사회와 만성질환의 증가는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을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예방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이에 따른 간호·간병서비스 수요 증가와 간호 분야의 전문적 가치가 증대하는 현실을 반영해 독립적이고 전문적 역할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간호법 제정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간호법 구체적 내용은
간호법은 먼저 기존 의료법에 있던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과 간호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 법률로 떼어냈다. 간호법 제정의 목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해 간호사·전문간호사·간호조무사(간호사등)의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권리 및 처우개선, 인력양성 방안 등을 명문화했다.
특히 의료법에는 없던 간호사의 권리 및 처우개선 방안이 담겼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간호사등의 장기근속 유도 및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사등 확보를 위해 의료기관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간호사등을 고용하는 기관 및 시설에도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지원을 의무화했다.
인력 양성을 위한 방안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병원급 의료기관에 ‘교육전담간호사’를 둬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역량 등을 전수하고 적응을 지원하도록 했다. 교육전담간호사는 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총괄 관리하고 교육과정 기획·운영·평가, 교육에 필요한 자원 확보·개발 등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교육전담간호사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에서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도록 했다.
논쟁 부분 상당수 제외…변수는 ‘거부권’
이번에 처리된 간호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대안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최초 발의안에는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했다가 현재 의료법과 동일한 ‘진료의 보조’로 유지했다. 정부가 5년마다 간호종합계획을 수립하게 한 것도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정도로 후퇴했다. 사실상 의료법에서 간호사, 간호조무사 부분을 떼어내는 수준으로 축소되다 보니 간호법이 제정되더라도 당장 의료현장이나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의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여당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해졌다. 앞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간호법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를 하면 여당으로서 특별한 대책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대통령께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간호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은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이 경우 연이은 거부권 행사로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을 약속했던 만큼 거부권 행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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