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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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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산수헌’ 고택에서 종가의 전통 장맛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정순임의 에세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복 종가 산수헌(山水軒)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고택으로, 글쓴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이다. 외지에서 한문학 관련 일을 하던 저자는 오십이 돼 종부(宗婦, 종가의 맏며느리)인 어머니로부터 간장, 된장, 고추장, 떡, 조청 등등을 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브랜드화 하기 위해 귀향을 결심하는 일화를 전한다.

[책 한 모금]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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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봉건 사회 별당 아씨 취급을 받는 것도,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오빠랑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아닌 척 그러려니 넘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모든 것에 그냥 안착하고 적응하는 내가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 어느 것도 적응되지 않았고, 부정하고 저항하고 좌절하고 일어나는 수 없는 과정을 겪은 지금에야 귀댁의 영애도 차별받는 딸도 아닌 정순임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썼다는 걸 안다. 나는 사람 정순임이다. - 015_밖에선 별당 아씨, 안에선 가시나


대구에서 생활하셔서 대구와 상주 본가를 오가셨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아가, 니가 이러고 있으면 우리 집은 끝이다. 제발 좀 일나거라.” 눈물로 말씀하셨단다. 그날 이후 몸을 일으킨 엄마는 평생 해보지 않은 농사일을 직접 하시면서 우리를 키우셨다, 두 번의 불천위를 포함 6대 봉사를 하는 집, 그 많은 제사와 60상부 묘사가 있는 종가 맏며느리인 엄마는 서른둘 그날부터 혼자서 우리집을 지켜낸 것이다. - 054_나도 출세하면 안 돼?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랑이라고 믿었기에 용감하게 결혼이란 걸 했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내게로 왔고, 나는 그 아이들과 세상을 잘 헤쳐나왔으니. 그리고 저거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 아이로 키웠고, 어떤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커 주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딸보다 더 나은 버팀목은 없다. “이혼해줘서 고맙다는 딸들은 세상에 너거밖에 없을 끼다. 딸들, 엄마도 고맙다!” - 095_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


산수헌(山水軒)은 고향집 당호이다. 우복 정경세 종가이고 국가민속문화재다. 고추장, 된장, 간장 담는 법을 배우고 판매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귀향한 이유다. 브랜드 이름을 정하면서 산수헌을 선택한 것은 대대로 이어온 장맛에 가장 부합하는 이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살아오신 길과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같은 이름으로 만나도 되나 하는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 229_산수헌의 나날


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 정순임 지음 | 파람북 | 232쪽 | 1만5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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