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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시대]'억세게' 운 좋아야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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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같이 살아도 '서류상 비혼'인 성소수자 커플
응급 수술 시 보호자는 '혈연 가족' 중심
함께 모은 아파트도 사실상 빼앗기는 현실

편집자주결혼이 필수가 아닌 세상. 비혼을 선택한 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누가, 왜 비혼을 선택할까. 비혼을 둘러싼 사회의 색안경만 문제는 아니다.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막연한 시선도 존재한다. 이른바 '비혼 라이프'의 명과 암을 진단해본다.
[비혼시대]'억세게' 운 좋아야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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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0일 새벽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60대 여성 김모씨가 극단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허모씨에게 장기를 기증해달라"고 적힌 유서만을 남기고 떠났다. 여고 동창이었던 김씨와 허씨는 40년간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연인이었다.


허씨가 같은해 8월 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두 사람 사이 관계는 어그러졌다. 정확히는 김씨가 내쫓겼다. 두 사람이 함께 돈을 모아 마련한 아파트는 재산권을 주장하는 생면부지의 허씨 조카에게 넘어갔고 김씨는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조카는 함께 쓰던 생필품과 귀중품 등을 챙겨나온 김씨를 절도죄, 주거침입죄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김씨가 부탁한 장기 기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연인 허씨는 이미 온 몸으로 암이 전이돼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간병은커녕 사랑하는 연인의 사망 사실조차 몰랐던 허망한 죽음이였던 셈이다.


성소수자 커플에게도 만남과 이별, 질병,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하지만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그때마다 그들의 사랑은 '증빙'이 필요해진다.


법 앞에서 얼마나 오래 함께 했는지, 서로의 삶에 얼마나 깊게 개입했는지, 서로의 재산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젊고 건강할 땐 아무 문제가 없지만 늙고 병 들면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오는데, 이들은 법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올 수가 없다.

이성애 사실혼은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 제도에 따라 결합관계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동성애 사실혼은 다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동성 결합관계는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성소수자 커플들에게 신혼부부 전세대출 같은 특혜는 아예 언감생심이다. 함께 살고 있어도 '서류상 비혼'이라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3.4%가 1인 가구'라는 통계에서 친구와 함께 동거, 연인과 사실혼 등 다양한 가구 형태는 눈에 보이지 않고 묻힌다. 모두가 같은 '비혼 1인 가구'로 치부된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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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 비하면 닉네임이 캔디(42)인 한 여성은 운이 좋았다. 그가 지난 4일 아시아경제와의 1시간여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한 말도 "저는 운이 좋았어요"였다. 캔디는 동성 연인(요청에 따라 이하 파트너로 지칭)의 임종을 지켰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실질적인 상주 역할로 조문객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파트너 A씨의 어머니가 배려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선 달랐다. 둘의 관계를 물었고, 가족을 데려오라고 했으며, 가족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의료법에서 환자를 대신해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는 '법정대리인'은 법률상 가족이다.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법적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혈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10년 넘게 함께 산 파트너는 그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환자 본인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거나 갑작스런 사고로 응급실에 가게 된다면 캔디는 보호자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혼한 사이였다면, 사위·며느리였다면 당연히 제가 보호자가 됐겠지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거기서."


상황이 더 복잡해진 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갈 때였다. 호스피스는 오랜 치료에도 병세가 낫지 않아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당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라 호스피스에선 법적 보호자 1인만 출입을 허가했고, 당연히 그건 A씨 어머니 몫이 됐다. 아픈 A씨를 돌본 것도, 그가 치료받은 병원과 호스피스를 알아본 것도 캔디였지만, 법 앞에서 그는 자기 권리를 주장해볼 엄두도 못 냈다.


캔디씨의 파트너 A씨는 2021년 6월 세상을 떠났다. A씨의 묘. [이미지제공=캔디]

캔디씨의 파트너 A씨는 2021년 6월 세상을 떠났다. A씨의 묘. [이미지제공=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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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가 가장 무서웠던 건 전화였다. "무서웠어요. 파트너가 입원한 호스피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가만히 이렇게 있다가 전화가 온다면, 그래서 A가 사망했다고 한다면 어떡하지? 더 무서운 건 전화가 안 오는 거였어요." A의 어머니가 사망소식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의 사망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 다가올까봐 캔디는 두려웠다.


2021년 6월 10일 새벽, 파트너는 어머니와 캔디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을 맞이했다. 다행히 A씨의 어머니는 오랜기간 딸을 간병해온 캔디의 역할을 인정했다. 덕분에 유품 정리도, 장례식장 연결도,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는 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헤어짐에는 절차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지 않았고 캔디가 A씨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캔디는 이를 계기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A가 유언장을 썼다면, 내가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다양한 가족형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너무 많이 누락되고 있어요. 단순 통계 누락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사회에서 비가시화되면서 정책에서도 비가시화되고,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들을 사실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죠.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거거든요. 가시화를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해요. 내가 나를 드러냈을 때 편안하거나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혐오받고 차별당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캔디의 설명 중)
김규진 씨와 배우자의 결혼사진. [이미지제공=규진 씨]

김규진 씨와 배우자의 결혼사진. [이미지제공=규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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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 김규진씨(31) 역시 운이 좋았다. 그에게 유일한 불운은 사랑하는 '언니'(규진씨가 부르는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동성 결혼 법제화가 되지 않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점 정도였다.


하지만 규진씨와 언니는 영어를 잘했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 동성결혼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으며, 마침 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둘은 미국 뉴욕에서 성혼선언문과 혼인 증명서를 받고 결혼했다. 타사에 비해 개방적인 그의 회사에서는 6일간의 신혼 휴가와 50만원의 경조금을 지급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한국, 서울에선 서류상 '30대 비혼 1인 가구'로 치부된다.


결혼 1주년을 맞아 혼인신고를 하러갔지만 당연히 '불수리'됐다. 현행법이 이성간 결합만을 결혼으로 인정하고 있어서다. 서류 접수 후 3시간 40분간의 기다림 후에 규진씨가 받아든 것은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간의 혼인임'이라고 적힌 불수리 통지서와 반환된 혼인신고서였다.


불수리 통지서의 의미는 두 사람의 결혼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규진씨와 와이프는 유서를 썼다.


"웬만하면 젊고 건강할 때까진 다 괜찮아요. 문제는 건강하지 않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죠. 그래서 자필 유서를 써놨어요. 가족이 유류분을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배우자에게 넘길 수 있도록요."


규진 씨가 4일 아시아경제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규진 씨가 4일 아시아경제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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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규진씨의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에서 규진씨 아버지의 말)

캔디와 규진 씨는 모두 '억세게' 운이 좋았다. 연인과 '국내 법적 결혼' 관계가 되진 못했지만, 캔디에겐 파트너 어머니의 배려와 인정이 있었고 규진씨에겐 외국어 능력과 정보력이 있었다. 이들이 운이 나빴다면 파트너의 임종을 지킬 수도, 연인과 결혼해 함께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찬성 여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5월 한국갤럽이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해 물은 결과 38%가 찬성했다. 반대는 52%, 11%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전 조사에서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여론은 2001년 17%, 2013년 25%, 2014년 35% 등이다.


성 소수자들은 언제까지 누군가의 배려와 행운에만 기대야할까.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면, 혹은 그 대안으로 평가받는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되면 이들이 누군가의 배려와 행운 없이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두 사람은 가까운 미래에 동성결혼이 법제화될 것이라 믿는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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