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전 수출을 미국 정부에 신고했으나 반려됐다. 미국은 원전 수출 통제를 이행할 의무는 미국 기업에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한국형 원전의 독자 수출 가능성에 제동을 건 셈이다. 한수원은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현재 기술 독자성 문제로 소송 중인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협의가 불가피해 졌다. 만일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논의가 장기화할 경우 체코 원전 수출 자체가 가로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40조원 규모의 폴란드 원전 수주에 고배를 마신 데 이어 체코 사업까지 삐걱거리면서 윤석열 정부의 '2030년 원전 10기 수출국' 목표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주요 외신 및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해 12월 미국 에너지부에 체코 원전 입찰 관련 정보를 제출했으나 올해 1월 반려 통보를 받았다. 이는 특정 원전 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해 외국에 이전할 경우 에너지부 허가나 신고 의무를 부과한 미국 연방 규정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부는 한수원에 보낸 서한에서 "규정에 따라 에너지부 신고는 미국인(법인)이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출 통제 이행 의무는 미국 기술을 해외로 가지고 나갈 미국 기업에 한정한다는 이유다. 미국이 한수원의 원전 기술 독자성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밝은 표정의 한미 정상 (평택=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방문,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22.5.22 see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원본보기 아이콘한국형원전 'APR-1400' 독자성 논쟁 재점화
한수원의 체코 원전 입찰 신고 반려에서 핵심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기술의 독자성 여부에 있다. 해당 기술을 한국이 자체 개발한 것인지,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전수 받은 것인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전력과 한수원을 상대로 해당 기술의 자립 여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재점화 됐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고 판단해 한국 자체 기술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APR-1400은 한국 기술로 개발한 3세대 원자로다. APR-1400 설계는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의 원자로인 '시스템 80+'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 웨스팅하우스가 컴버스천 엔지니링을 인수하며 시스템 80+ 기술도 이전됐다.
이에 따라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 원천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IP)이 적용된 만큼 한국이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한전 역시 2017년 APR-1400의 IP를 두고 웨스팅하우스와 갈등을 벌였지만 양측은 온전히 협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이 갈등은 2018년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 협력의 주요 채널인 '한미원자력고위급위원회(HLBC)'으로 신경전이 확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HLBC는 2차 전체회의를 끝으로 지난해 한미정상회담에서 위원회 재가동에 합의하기까지 4년 간 사실상 방치됐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측 갈등을 풀고 한미 원전 동맹을 강화할 것이란 기대가 커졌으나 3차 HLBC 전체회의는 여전히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못한 상황이다.
美에 발목잡히는 원전 수출강국 목표
문제는 APR-1400 원천기술 여부를 놓고 양국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직접적인 손실은 우리가 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한수원이 뛰어든 40조원 규모의 폴란드 원전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게 대표적이다. 앞서 폴란드 정부는 자국의 첫 원자력발전소 건설 1단계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이용하기로 확정했다. 폴란드 신규원전 사업은 6~9기가와트(GW) 규모의 가압경수로 6기를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당시 한수원,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의 EDF 등 3곳이 제안서를 제출했다. 우리 정부로선 그동안 수주에 공을 들여온 사업을 미국에 내주게 된 셈이다. 당시 일각에서는 폴란드의 웨스팅하우스 선택에 있어 한수원이 미국 측과 지적재산권 소송으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 어느 정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가 폴란드 사례를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미국 법원이 웨스팅하우스 손을 들어줄 경우 우리 정부의 원전 수출강국 목표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들어 원전 해외수출 10기를 목표를 내걸면서 체코와 폴란드 신규원전 건설 사업 수주에 자신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웨스팅하우스와 원전기술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앞으로 해외 원전 수출길이 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 국수주의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바이든의 정책들을 보면 국제 관계를 해치고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취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신고에 관해서는 웨스팅하우스가 협조하기로 돼있으나 협조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버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웨스팅하우스 지분 51%를 가진 브룩필드 리뉴어블이 웨스팅하우스의 몸값을 올려 팔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한수원은 지난 2월 웨스팅하우스에 보낸 서한에서 미 에너지부의 반려 경과를 공유하고 논의를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체코 원전 사업은 현재 실질적으로 최종 공급사 선정까지 시간이 1년 정도 가까이 남은 상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웨스팅하우스 측과 논의를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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