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300兆 파운드리 승부수
반도체 업계 "조성,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글로벌 패권전쟁 승리 교두보 마련
한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조성된다. 삼성전자 가 300조원을 투입해 용인 남사읍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하면서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추진 중인 원삼면 반도체 클러스터와 함께 용인시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중심지'로 탈바꿈 할 전망이다. 미국·일본·대만 등이 민관 협력을 확대하며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실리콘 쉴드(방패)'를 장착하게 된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다툼 속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00조 투자한 삼성…용인으로 모이는 기업들=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는 시스템반도체 특화 단지는 710만㎡(215만평) 규모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약 2.5배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이 일대에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반도체 생산단지와 인근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등 최대 150개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용인은 일찌감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는 지역으로 관심이 더 모아졌다. SK하이닉스는 용인 원삼면에 415만㎡(126만평) 규모로 121조8000억원을 투자해 첨단 메모리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고 있다. 이곳에는 SK하이닉스의 팹 4기 외에도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도 대거 입주할 예정이다. 가동 예상 시기는 2027년이다.
삼성은 이번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기존 평택과 미국 오스틴 공장에 더해 미국 테일러에 신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에서 업계 1위인 대만 TSMC의 시장 점유율은 58.5%로, 삼성전자(15.8%)와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사장)은 "신규 단지를 기존 거점과 통합 운영해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화성·기흥을 메모리·파운드리·연구개발(R&D), 평택·남사읍은 첨단 메모리·파운드리 핵심 기지로 육성해 시너지를 추구한다.
정부가 경기도 용인을 국가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고 지방에도 14개 국가산단을 새로 지정해 반도체·미래차·우주 등 첨단산업을 육성한다. 사진은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미국·일본·대만처럼 빠르게…'속도가 생명'=그간 기업들은 투자를 결정해도 정부의 인허가 지연, 지역 균형 발전 훼손 비판 등에 발목잡혀 실제 집행까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다. 송전선 문제로 5년을 허비한 삼성 평택 캠퍼스, 공업용 용수 문제로 1년6개월이 지연된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모두 이런 사례다.
반면, 일본의 경우 대만 TSMC가 구마모토 공장을 세울 당시 2021년 10월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6개월 만인 2022년 4월 착공에 들어가게 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은 미국 정부가 1996년 부지 선정 및 착공에 들어갔는데 1997년부터 가동됐다. 중국 시안 삼성전자 공장 역시 2012년 부지선정과 착공이 발표된 이후 2014년부터 운영됐다.
다만, 이번엔 정부와 지자체가 원팀으로 움직여 속도감 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전역이 수도권 공장 총량제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 물량'으로 배정되는 방안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첨단단지 조성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속도를 발목 잡는 모든 요소를 해제할 것"이라며 "범정부 지원단을 가동해 2026년 말 착공할 수 있도록 전속력을 내겠다"고 했다. 최근 정부 여당은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지원하며 7년 넘게 소요되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2년6개월로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SK하이닉스 생산시설보다 조성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조치에 환영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단지 조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면서 "전기나 용수 등 반도체 인프라 시설이 빨리 깔리고, 토지매입 절차나 용도변경 등의 규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그만큼 허들이 없어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직접적인 비용보다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꼽았다. 이 관계자는 "잘못됐을 경우를 가정해 다른 지역을 알아봐야 하는 등의 상황이 없어지게 됐다"면서 "기업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하나로 뭉치는 韓 반도체…'실리콘 쉴드' 역할 기대=반도체 산업은 전후방 산업 연계, 공급망 내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 경쟁이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반도체 생태계 및 국가 간 연합 경쟁으로 전환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단적으로 대만 신주과학공업단지에는 TSMC, UMC로 대표되는 파운드리 제조시설을 비롯해 미디어텍 같은 반도체 설계 기업 등 대만 IT 기업 수백개가 집결해 있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이 완료되면 한국에도 이 같은 반도체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용인 부근에는 기흥·화성·평택·이천 등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반도체 생산단지와 소부장 기업들이 위치해 있고, 판교에는 팹리스 기업들이 밀집돼 있다. 용인 클러스터는 메모리-파운드리-디자인하우스-팹리스-소부장 등 반도체 전 분야 밸류체인을 완성하고, 국내외 우수 인재를 집적한 '글로벌 반도체클러스터'의 선도모델이 될 전망이다.
외신도 한국의 클러스터 내용을 비중있게 다뤘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가장 공격적 노력"이라며 "삼성의 투자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를 이끌겠다는 한국의 야망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이 최첨단 공장을 자국에서 운영하면서 미국에서도 일정한 양산 규모를 확보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최근 두 회사는 용인시가 구성한 '국가첨단산단 조성지원 추진단(TF)' 첫 회의에도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가첨단산단 조성 세부 절차와 일정을 살피고, 사업 기간 단축을 위한 사전 검토 사항을 점검했다. 공업용수와 전력 공급, 도로·철도 인프라 확충, 보상과 이주대책, 배후도시 조성을 위한 추가 대책, 각종 기반시설 설치 관련 규제 등 전반적인 사항도 검토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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