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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만질 수 없는 최상위'가 450만원…빈 술병도 귀한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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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류시장 맞물려 공병시장 활기
해외에서는 이미 수 천만원대 수집품
소품·인테리어·디캔터 등으로 활용 중

"내용물이 든 것도 아니고, 빈 술병 값이 왜 이렇게 비싸죠?"


중고거래 사이트를 둘러보던 직장인 A(30)씨는 빈 술병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수입산 양주, 위스키 등이 담겼던 술병 가격은 대부분 수만원대였으며,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 제품도 있었다. 물론 한정 생산된 고급술이 담긴 병이었고 디자인도 세련된 편이었지만, 결국은 '재활용 유리병'과 다를 바 없는 공병(空甁)이 높은 가격에 팔려나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프리미엄 소주, 양주 등 고급술이 주목받으면서 '공병 리셀'도 덩달아 활성화되고 있다. 현행법상 개인 간 온라인 주류 판매는 불법이지만, 공병은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런 공병은 일부 수집가의 표적이 되거나, 주류 판매점의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활용되며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고 있다.


고급술 담았던 공병…중고거래선 귀한 몸
한정판 고급 술의 '공병'을 파는 광고가 올라와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지출처=중고거래 플랫폼]

한정판 고급 술의 '공병'을 파는 광고가 올라와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지출처=중고거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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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 리셀은 주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이뤄진다. 유명 플랫폼에선 한정판 술의 공병을 고가에 판매 중인 게시글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공병의 종류가 천차만별인 만큼 가격대도 다양하다. 적게는 수천원에 불과한 병도 있는가 하면 14만원을 넘는 고가의 술병도 있다.


판매되는 병은 일반 주류가 아닌 한정판 고급 증류주, 외국산 위스키 등이다. 14만5000원의 판매가가 적용된 한 공병은 일본 유명 주류 기업 산토리에서 제작한 '히비키 하모니' 위스키병이었다. 산토리가 만든 위스키는 주류 경매에서 한 병당 억대에 팔려나갈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7년 전 세계 786병 한정으로 출시된 '루이13세 블랙펄'의 공병은 무려 450만원에 거래 중이었다. 판매 게시글에는 "감히 만져볼 수 없는 최상위 존재감", "프랑스 레미마틴 가문만을 위해 특별히 생산된 양주"였다며 병의 희소가치를 강조하는 문구가 적혔다. 이 술은 경매 낙찰가 약 3000만원인 것으로 전해지며, 국내에는 단 6병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주류 시장 열리자 공병 수집도 활성화
전 세계에 단 786병 판매된 루이13세 블랙펄의 공병. [이미지출처=중고거래 플랫폼]

전 세계에 단 786병 판매된 루이13세 블랙펄의 공병. [이미지출처=중고거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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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 수집은 사실 해외에선 수 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취미다. 고급 양주를 담았던 병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수집 요소가 된다. 골동품 정보 웹사이트 'VIP 아트 페어'에 따르면 현재 서구권에서 공병의 시장 거래가는 60달러(약 7만8700원)부터 2만달러(약 2624만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해외에서 주로 수집되는 공병은 ▲오래전 생산 중단돼 희귀해진 병 ▲한정 판매된 술을 담았던 병 ▲소수 고객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된 병 등 제각각 '수집 가치'를 지닌다. 유서 깊은 양조장의 장인이 만든 술이었다거나, 왕족·귀족 등을 위해 빚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가격은 수천만 원대로 치솟는다.


이와는 달리 과거 국내 주류 시장에선 '수집할 가치가 있는 술병'이 나타날 여력이 없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소주는 대부분 저렴한 원자재로 만든 대량생산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요', '원소주' 등 고급 증류주가 MZ세대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와인·위스키 등 해외산 프리미엄 주류 수입도 증가하자 국내에도 한정판 술이 출시됐고, '공병 리셀러'를 자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디캔터로 좋아요"…수집욕 자극,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
프랑스 한 골동품점이 공개한 1860년산 양주의 공병 및 포장용 나무 상자. [이미지출처=로카이유안티크 인스타그램]

프랑스 한 골동품점이 공개한 1860년산 양주의 공병 및 포장용 나무 상자. [이미지출처=로카이유안티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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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거래되는 공병은 수집품이자 소품이다. 실제 중고거래 플랫폼은 대부분의 공병을 '인테리어'나 '장식용품' 항목에 분류한다. 이렇다 보니 공병의 진품 여부를 구분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판매자들은 병뿐 아니라 제품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포장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상대방에게 보낸다. 통상 한정판 주류는 일반 제품과 달리 화려한 박스에 포장하기 때문에, 포장재 자체가 일종의 '정품 인증'이기 때문이다.


한 판매자는 공병이 "수집용이 아닌 디캔터(Decanter)로도 훌륭하다"라고 말했다. 디캔터는 미국, 유럽 등 서구권에서 와인 등 술을 소량 담아두는 병을 의미한다. 가정 내 장식용으로도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고급 바, 클럽 등 주류 판매점도 공병 시장의 큰손이다. 수도권 한 술집에서 근무하는 이모(33)씨는 "공병을 진열대에 장식처럼 해두는 곳도 있다. 전문적인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이라며 "물론 수십만원대 공병을 장식용으로 대량 구매하는 곳은 드물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한정판 술병을 그대로 폐기 처분하는 것보다는 (공병 리셀이) 더 이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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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개인 간 주류 판매가 금지된 것 또한 공병 리셀의 인기를 끌어올린 원인일 수 있다. 현행 주세법상 주류는 주류소매업 및 의제 판매업 면허를 받은 자가 허가된 장소에서 대면으로만 판매할 수 있다. 정당한 면허 없이 주류를 판매하다가 적발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씨는 "서양에서도 한정판 술은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 수집 용품"이라며 "술 경매가 덜 활성화된 한국에선 공병이라도 수집해 좀 더 저렴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라고 추측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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