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성 근위축증(SMA) 1형 진단을 받은 한 살배기 아기는 지난해 7월 약 20억원에 이르는 유전자 대체 치료제 ‘졸겐스마’(노바티스)를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보험 급여로 투여했다. 1형은 치료가 없으면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혼자서 일어날 수 없고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다. 온 몸의 근육이 약해져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나중에는 음식도 제대로 못 삼키다 2세 이전에 사망한다. 그만큼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데 아기는 비교적 빠른 생후 77일째 되는 날 졸겐스마 투여가 이뤄졌다. 보호자가 “아기 목소리 톤이 약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것 같다”며 첫 신경 외래에 방문한 지 29일 만이다. 1형은 적어도 증상 발현 이후 4개월까지는 진단돼야 예후가 좋다. 아기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보호자가 빠르게 병원에 방문한 후 아기 증상을 SMA로 보고 검사한 의료진 판단이 어우러지면서 적기에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졸겐스마 투여 이후 아이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4개월 이후엔 고개가 뒤로 넘어가더라도 원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됐고 팔을 올려 물체를 쥘 수도 있다고 한다. 최근 2주 전에 병원에 방문했을 땐 아기가 앉아서 버티는 것도, 시끄럽게 우는 것도 가능했다. 주치의인 이하늘 소아신경과 교수는 “일반 아기들한텐 모든 게 사소한 행동들이지만 1형을 앓는 아기는 가만히 놔두게 되면 다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검사 받으려면 비용 많게는 40만원
현재는 이런 희귀질환을 조기 검진 받기 위해서는 아기의 부모가 1건당 5만원, 많게는 40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부담스런 비용 외에도 또래보다 약한 아이가 희귀질환일 거라고 인지하는 부모가 많지 않다. 서서히 신체상태가 나빠져가는 희귀질환 특성상 치료제를 얼마나 적기에 사용했는지에 따라 예후가 확연하게 달라지는데 여러 요인으로 치료제 투입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확한 진단 검사와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에 한해서는 정부가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에 추가해야 한단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우리나라는 1997년 보호자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신생아 선별검사가 도입된 이후 무료로 이뤄지는 건 50여종의 선천성 대사이상질환, 청각 선별 검사에 한정된다. 모두 조기에 검진만 되면 치료할 수 있어 아기의 삶의 질을 현저하게 바꿀 수 있는 질환들이다. 마찬가지로 희귀질환의 치료제가 개발된 만큼 여느 때보다 빠른 검사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졸겐스마의 급여 조건이 생후 12개월 이내이므로 SMA를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에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는 SMA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리소좀 축적병에 해당하는 폼페병, 뮤코다당증, 고셔병, 파브리병도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신생아 선별검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리소좀 축적병은 체내에서 생성된 물질 중 필요한 성분을 선별·분배하는 리소좀이 효소 부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신체 조직과 장기에 손상을 일으키는 유전성 질환이다. 중증복합면역결핍증과 부신백질이영양증도 조기에 발견되면 치료가 쉬워진다.
이들 질환은 대개 영아의 발뒤꿈치에서 혈액을 채취해 검사하는 신생아 선별검사와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검사가 특별히 번거로운 것도 아니다. 이정호 대한신생아스크리닝학회 총무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적어도 조기 발견이 가능하고 치료가 가능한 희귀질환에 대해서는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발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치료제 있는 희귀질환…해외선 국가 주도로 빠르게 선별검사에 들어가
해외에선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에 한해 국가 주도로 빠르게 선별검사 항목에 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검사와 치료 가능한 특정 희귀질환의 목록을 공개하고 검사 비용을 지원한다. 이 때 주 정부의 지침이 되는 게 미 보건복지부의 선별검사 대상질환군(RUSP)인데 현재 61개의 질환이 포함돼 있다. RUSP엔 SMA의 최초 치료제인 ‘스핀라자’(바이오젠)가 2016년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자 같은 해 SMA가 추가됐다. 폼페병과 뮤코다당증은 각각 2015년, 2016년에 RUSP에 들어왔다. 대만은 26개 유전질환에 대한 선별검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만은 2014~2016년 3년간 SMA 환자 8명을 신생아 선별검사로 조기 발견하기도 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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