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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과 싸우는 0.1%]①“뒤늦게 바로잡은 뇌병변 오진…이젠 요리사 꿈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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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해 희귀질환 판정을 받는 환자는 전체 인구의 0.1%인 5만여명이다. 조기진단이 어려워 대부분 성인이 돼서야 희귀질환 환자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치료제 역시 고가에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과 진단·치료를 위한 대책을 찾아본다.


오산대 호텔조리계열 새내기인 김민수씨(19)는 희귀 질환인 선천성 근육병증 환자다. 근육병증은 신체와 내장의 근력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면서 나중엔 걷기가 어려워지고 호흡까지 가팔라지는 질환이다. 심해지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나중엔 누워만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8일 만난 김씨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대학교 오리엔테이션(OT) 수업도 곧잘 듣고 있다. 김씨는 "1학년 때 어떤 요리사가 될지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할 예정"이라고 했다.

선천성 근육병증을 앓고 있는 김민수씨(19)와 그의 어머니 이명자씨(52)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선천성 근육병증을 앓고 있는 김민수씨(19)와 그의 어머니 이명자씨(52)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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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진단으로 치료 이어져 악화 막아…뇌병변 오진도”

김씨의 질환이 더 나빠지지 않고 성인이 돼 혼자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데 대해 어머니 이명자씨(52)는 2017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근육병증 진단을 정확히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출산 직후 유전자 검사(질병진단)를 받았는데 그 당시 진단검사의 한계 탓에 아들이 ‘뇌병변(뇌 손상에 따른 중추신경장애)’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민수는 하나를 알려주면 2~3개까지 습득할 수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뇌병변은 확실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그저 남들보다 조금 약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김씨의 형인 김민규씨(25)가 간밤에 호흡을 제대로 내쉬지 못해 생사를 오가는 일이 생기자 "유전자 검사를 한번 받아보라"는 의료진 조언에 따라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형이 유전증인 근육병증이 있다는 진단에 김씨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말 그대로 희귀 질환인 탓에 긴 시간이 흐르고 증상이 어느 정도 발현되고 나서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다만 김씨는 운이 좋았다. 김씨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40~50% 수준으로 낮은 편이지만 다른 근육병증 환자와 비교해서는 월등히 높았다. 근육병증 진행 상황이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근 병원에서 호흡재활을 받는 주기도 6개월에 1번으로 크게 줄었다.


김민수씨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김민수씨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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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증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진단을 받고 호흡재활요법으로 치료를 하게 되면 진행 속도를 확연히 늦출 수 있다. 2008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협력해 설립된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선 근육병 환자가 폐의 근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호흡 보조기를 지원·치료한다. 이동이 어려운 환자에겐 방문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원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교과서적으로 근육병 환자의 수명은 20년이지만 국내에 호흡재활요법이 2000년대 도입된 후 40~50년 이상 살고 있는 근육병 환자가 많이 있다"고 했다.

희귀질환자 0.1%…갈길 먼 조기진단

의학기술 발달에 따라 희귀질환도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김씨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선제적으로 희귀질환이라는 진단을 어릴 때 받는 게 좋다. 그러나 여전히 진단을 늦게 받는 희귀질환 환자가 절대 다수다. 질병관리청이 작년 11월에 발간한 ‘2020 희귀질환자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0년에 희귀질환 판정을 받은 사람은 총 5만231명이다. 전체 인구의 0.1%다. 이중 발생자 수 200명 초과 질환(50개) 기준 성인인 20세 이후에 진단된 환자의 비율은 92.65%에 달했다. 10명 중 9명은 성인이 돼서야 본인이 희귀질환 환자라는 걸 안다는 얘기다. 치료제가 많이 나와 어릴 때 진단을 받으면 좋지만 1세 미만의 경우 0.84%에 불과했다. 1~9세(1.72%), 10~19세(4.79%)에서도 진단이 저조했다. 증상이 나타나도 다른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례가 많고 희귀질환을 다루는 전문의가 드문 탓에 진단 인프라 자체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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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희귀질환의 조기 진단 중요성을 알고 있다. 이에 2018년부터 매년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을 지정해 지원이 이뤄지는 희귀질환 수를 확대해오고 있다. 2018년 926개던 대상질환은 현재 1165개로 늘었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진단이 매우 까다로운 극희귀질환(현재 299개)에 대해 진단과 비용을 지원하는 기관도 72개까지 늘렸다. 또 대부분 희귀질환 진단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탓에 비수도권 환자들이 병원에서 밤을 꼬박 새는 일이 잦아지자 2019년부터는 권역별로 11개의 희귀질환거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갈 길은 멀다. 진단은 희귀질환자가 앞으로 넘어야 할 많은 산 중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진단은 됐지만 국가지정관리 대상에 등록되지 못한 희귀질환도 많다. 중증 호산구성 천식, 전신 농포건선, 한랭응집소증이 대표적이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국장은 "희귀질환으로 등록돼야 산정 특례를 통해 진료비가 1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그나마 덜 수 있다"고 했다. 최원아 교수는 "진단이 되더라도 병원과 거리가 멀거나, 의료비용이 부담되는 등 여러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진단 후 지속적인 추적·관리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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