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26일 밤 10시쯤. 인천 중구의 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을 청하던 김모씨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연인 관계이던 A씨(30·여)와 B씨(35·남)가 서서 말다툼하던 소리였다. A씨는 자신의 벤츠 차량 운전석에 탑승했고, B씨가 "문을 열라"며 고함을 치며 뒤따라왔다.
B씨는 조수석 문손잡이를 거듭 잡아당겼는데, 그 상태에서 A씨의 차량이 급출발을 했다. 결국 B씨는 10m 정도 끌려가 주차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B씨는 각종 후유증을 입을 정도로 크게 다쳤지만, 당시 A씨는 그대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김씨의 신고로 B씨는 병원에 옮겨질 수 있었다.
검찰은 A씨를 특수중상해 및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B씨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고 약 4시간 동안 100㎞가량 음주운전(혈중알코올농도 0.08%)을 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음주운전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특수중상해 혐의는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B씨가 조수석 쪽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상해를 가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목격자인 김씨도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갑자기 차가 출발했는데, 남자가 따라가면서 떨어지는 것을 봤다"며 "피를 흘리고 있어서 그냥 내버려 두면 위험할 것 같았고, 신고하게 됐다. 차량은 브레이크를 한번 밟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 변호인은 'B씨의 말이 위협적이었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네.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았다"고 했다. 재판장이 'B씨가 어떤 이유에선지 다리가 균형을 잃은 상태로 질질 끌려가던가요'라고 묻자, 김씨는 "아니요, 그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노호성 부장판사)는 A씨에게 최근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우선 A씨의 음주운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음주운전 거리가 100㎞에 달한다. 음주운전 처벌 전력이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재차 동종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음주운전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당시 B씨가 고성을 지르며 피고인을 압박하고 있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차량을 운전하게 됐으므로, 음주운전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특수중상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론) 피고인이 B씨의 손이 손잡이에 낀 상태를 이용해 매달고 끌고 갔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한 의도로 이 사건 차량을 운전했다고 단정할 만한 정황도 찾아보기 어렵다"며"차량 출발 당시 피해자가 차량 밖에서 문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을 보았거나 들어서 알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주차장을 떠나고 약 30분이 지나 휴대전화로 '오빠, 어디야?'라고 물었는데, 대신 전화를 받은 주차장 경비원이 '경찰과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고 안내했으며, A씨는 B씨를 찾아가기 위해 '병원이 어디인지' 묻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A씨가 주차장을 나가기 전 잠시 차량을 멈췄던 점에 대해선 "주차장 장애물을 지나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일시 서행하거나 제동했던 것으로 보일 뿐, 피해자가 상해를 입은 사실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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