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잡지 우먼센스, 주부생활 기자 출신 이은숙 대표 창업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소셜캠퍼스온의 16층 빌딩은 여러 사회적기업 창업가들이 입주해있는 공간이다. 탁트인 창문 밖으로 대로변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볕이 옹기종기 모인 창업가들의 거점을 감싸 안는 모양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24일 노인 전용 학습지 ‘실버톡’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실버톡’의 이은숙 대표(62)를 만났다. 이 대표는 1984년에 여성 전문 잡지 '주부생활'에 입사해 20년 동안 잡지사 기자로 근무했다. 여성잡지 '우먼센스' 편집국장 출신이기도 하다.
실버톡은 노인 전용 학습지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2021년 7월에 초기자금 4000만원으로 창업했다. 기자출신 3명이 모여 은퇴 이후 가치있는 삶을 고민하다가 창업으로 이어졌다. 평생 ‘글밥’을 먹고 살아온 이들인 만큼 ‘콘텐츠 경쟁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여성잡지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노하우가 밑바탕이 되어, 노인들만을 위한 학습 콘텐츠 제작 나선 것이다. 아이들 전용 학습지를 살짝 변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기억력을 자극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 구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 대표는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현재까지 약 1500명의 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부모님의 치매 예방 등을 걱정하는 자식들이 검색엔진에 ‘노인 치매 학습지’로 검색하고 자발적으로 실버톡 정기구독을 하는 패턴이다. 지난해 서울 광진구청과도 협약을 맺고 학습지를 공급했다. 광진구청에서 독거노인들을 생활지도사가 매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노인들의 인지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로 실버톡이 낙점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16일에는 서울시립마포실버케어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인지 개선을 향상시키기 위한 콘텐츠 개발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60대의 적지 않은 나이로 창업을 통해 새 인생을 시작한 것은 “뿌듯함과 설렘, 고단함이 교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이후 해소되지 않은 사회적 기여에 대한 열망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은 여러 효능감을 준다. 스타트업 창업에 필요한 여러 지원서를 쓰고, 제도와 정책을 알아보면서 독립심은 더욱 커졌다. 자식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그는 “아이들이 저를 더 인정해주는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노환 등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은 넘어야할 과제다. 그러나 “여태껏 사회생활을 하면서 축적해온 인적 네트워크”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창업가가 누릴 수 있는 ‘인센티브’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실버톡은 어떤 기업인가.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 전문 학습지 ‘실버톡’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두뇌 운동을 자극할 수 있는 학습지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급해,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실버톡 구독을 신청하면 매달 4주 분량의 학습지를 구독자의 집으로 배송한다. 아직 앱이나 인터넷 등 디지털 콘텐츠 형태로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고, 아날로그 방식의 종이 학습지 형태로 문제를 제공한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사회적기업진흥원 지원사업을 통해 4000만원을 지원받아 2021년 7월 회사를 세웠다.
-왜 어르신 학습지라는 아이템에 주목했나.
▲우선 잡지라는 콘텐츠를 선택한 것은 제 직업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저는 주부생활과 우먼센스라는 여성 잡지에 20여년 정도 근무한 기자, 편집국장 출신이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가장 익숙했다. 어르신 전용 학습지라는 아이템에 착안한 이유는 개인적인 배경 영향 탓이 크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 아흔이신데, 최근에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으셨다. 경도인지장애는 아직 치매라고 할 수는 없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제대로 케어만 해주면 치매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 뇌운동을 열심히 하게끔 돕기만 해도 된단 의미다.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서, 잡지사에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던 동료들을 모아 ‘한번 해보기’로 하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주부생활, 우먼센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인가.
▲그렇다. 다들 수십년간 사회생활을 한 이후 은퇴를 했다. 일만 했던 기자들은 ‘주부’로는 사회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큰 돈을 벌기 위한 의도보다는 사회적인 존재증명이 필요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에 지원했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초기자금인 4000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그런데 ‘나랏돈’이 그냥 주는 게 아니더라. 요구되는 조건들이 까다로웠다. 하나하나 갖추다 보니 주식회사를 만들게 됐고, 대표가 됐다. 그렇게 2021년 7월에 회사를 만들어서 2021년 말에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 그리고 실버톡을 2022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꾸준히 생산했다.
-학습지라고 하지만 구독 주기가 한달이라고 알고 있다. 이러면 학습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주간으로 배송을 했는데 비용 문제에 부딪혔다. 분실도 많이 됐다. 아직 저희의 자금 사정 등으로 인해 월간 배송을 하고 있다. 방문교사 파견 등도 구상했으나 이 역시 현실적인 한계가 적지 않았다. 방문교사의 이력 등을 일일이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 소규모 스타트업인 저희로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라는 점을 알았다. 사업이 조금 더 안정되면 배송 주기의 한계를 디지털화를 통해 극복하고 싶다. 노인별 맞춤형 학습지를 제공하면서 개별적인 관리도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다.
-디지털화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저희가 특별한 마케팅 모델 등을 갖추지 못한 상황임에도 쿠팡과 네이버 등을 통해 저희 학습지를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이 1500명 정도 된다. 저희의 콘텐츠 경쟁력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 덕분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협업을 제안하는 비즈니스 제의들도 많이 들어온다. 저희는 노인분들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으니, 이를 디지털화하는 방향으로 제안이 온다. 앱 등을 제작할 수 있는 기업과 협업을 통해 저희의 학습지를 디지털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 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아날로그식 인쇄를 통해 종이 학습지를 배송하는 현재의 기본 컨셉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물론 요즘같은 생각에 이런 종이 학습지 생산 산업은 ‘굴뚝 산업’에 속할 수도 있으나, 노인들의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해선 손으로 직접 학습지를 풀어보는 과정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노인 대상 학습지들 가운데, 실버톡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시중에 노인 전용 학습지들의 경우 잘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학습지를 살짝 변형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저희는 애초에 타깃이 노인들이고, 노인 독자들의 인지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에 특화된 콘텐츠로 채우고 있다. 치매전문가나 전문의의 감수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과거 기억의 회상을 자극시킬 수 있는 문제들을 많은 부분 구성한다. 예컨대 기억회상 부분에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는지 고향, 외모, 성격, 돌아가신 나이,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고 글로 써 보라’는 식으로 문제를 낸다. 생활밀착형, 어르신 맞춤형 학습지라는 점이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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