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가리지 않고 ‘고성부터’…'화 주체 못하는' 환자 매년 늘어
[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윤모씨는 지난해 아파트 윗집의 층간소음 탓에 순간 욱해 망치로 천장을 수차례 찍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 작은 생활소음에도 우산 손잡이로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엄청나게 큰 소음은 아니었는데 나도 몰랐던 순간의 폭력성에 아차 싶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씨는 직장에서 팀원과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하던 중 3년 선배에게 “이 부분은 내일까지 좀 더 보완해달라”는 말을 듣자 흥분해 언성을 높이며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었다가 다툼으로 번졌다고 했다. 윤씨는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에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찾았고 의사에게 “분노 통제에 어려움이 있다” “상담 치료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주체 안 되는 화…어떡하죠?”
코로나19 이후 분노의 감정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마음 치료가 엔데믹 시대의 과제가 됐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지만 타인에게 지나치게 화를 드러내는 탓에 대인관계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1827명이던 분노조절장애 환자는 2021년 2071명으로 13.4% 늘었다. 2021년 기준 남성이 87.5%(1812명)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남성의 경우 20대가 40.2%(728명)로 가장 많고, 이어 30대(17.7%·320명), 10대(15.1%·273명), 40대(12.6%·229명) 순으로 나타난다. 분노조절장애의 정식 명칭은 분노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간헐적 폭발 장애’다. 보통 사람이 느끼기에 ‘이렇게까지 화를 낼 정도인가’ 하는 상황에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주위에 보이는 어떤 물건이든 집어들고 위협을 가하거나 던지기도 한다.
이태엽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 수가 늘어나면 분노조절장애 환자도 함께 늘어난다”며 “보통 분노조절장애 하나만 진단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실제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는 2019년 79만6364명, 71만8143명에서 2021년 91만785명, 81만9058명으로 2년 새 각각 14.4%, 14.1%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분노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다만 이 교수는 “달리 보면 이런 환자가 증가세인 건 정신 건강도 몸만큼 중요해졌다는 인식이 커져 병원에 직접 방문해 진단을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계속 성찰하면 개선 여지 있어”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장기에 가정 내 폭력·폭언 등 학대의 대상이 됐던 사람이 학습한 분노를 타인에게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한 게 아닌데도 본인이 느끼기엔 크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한다”며 “일종의 트라우마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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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에서 분노를 느끼게 됐는지 계속 되돌아보면 크게 개선될 수 있는 게 분노조절장애다. 전문가들은 “정말 분노할 만한 상황이었는지 스스로 분석해보고 더 나은 선택지를 찾고 시나리오를 짜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는 이완요법을 해보거나 운동 등 새로운 취미를 찾는 것도 좋다.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단 빠져나오는 것도 필요하다. 홍 교수는 “상황을 원만히 해결하는 방법은 분노 말고도 다양하다”며 “적절한 대처법을 통해 상황 속에서 감정을 잘 해소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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