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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외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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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이야기는 엄마의 실종에서 시작한다. 이혼 후 아내가 있는 남자와 십년 가까이 불륜을 하던 '엄지민'의 모친 '염보라'는 어느 날 문자 한통만 남기고 사라진다. 엄지민은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가 자주 가던 수영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엄마의 불륜 상대인 '오진홍'의 아내 '허인회'를 만나게 된다. 외곽에 위치한 도시의 마을회관 수영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불륜, 살인, 납치, 사이비종교 범죄 속에서 누구 하나 정상인 것 같지 않은 인물들뿐이지만 소설은 말한다. 사랑 앞에서 그 누구도 제정신일 수 없다고. 작가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강력한 캐릭터와 압도적인 서사로 풀어내며 긴장감 넘치는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냐?”

허인회는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웠다. 얼굴이 새빨갛게 타고 있었다. 인회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사랑이 아니야. 그 사람만 보면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 내 눈에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데 어째서 이게 사랑이 아니야!”(145쪽)

“왜 너한테 오진홍을 줘야 하는데. 너희 뭐야? 사랑했어? 아니잖아. 운명의 상대인 척,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척, 그렇게 척들을 해놓고 왜 이러고 있어? 왜 병들어서 버림받았어? 이게 사랑이야? 너희가 십년 동안 지랄하며 쌓았던 사랑이야?”

보라는 기묘한 얼굴로 인회를 바라보다 물었다.

“지금 오진홍이랑 내가 사랑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거야?”

“너 같은 것들은 죽어버려야 해. 완전히 죽어야 해.”(253~254쪽)


“그들이, 그 신혼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죽인 거죠? 저도 결혼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식장에서 많은 커플을 만났고요. 세상에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외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그들을 죽이고 싶었어요.”(299~300쪽)


진짜 사랑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허인회는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때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술 냄새, 얻어맞고 내동댕이쳐졌던 교실, 옷을 벗은 채 헤매던 검은 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울던 언니, 사랑을 잃은 어머니의 얼굴, 으슥한 골목과 험악한 남자의 손, 간신히 구한 반지하의 곰팡이 핀 하숙집, 남자를 가지고 노는 년이라고 적힌 글씨, 그녀를 속이는 사람의 얼굴, 아이의 흔적이 담기지 않은 빈 초음파 사진 같은 것들.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끝없이 기다리지만 진짜 사랑이 나타나지 않아서, 인회는 자꾸만 착각을 한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나 술 냄새 따위가 사랑의 자리를 꿰차버린다. 그런 것들이 사랑의 얼굴이 된다. 할머니를 너무 간절히 기다린 나머지, 그녀를 죽인 범인이 집에 왔을 때 그를 할머니라고 착각하고 문을 열어주는 아이처럼, 허인회는 일그러진 사랑의 얼굴들에 문을 열어준다.(331~332쪽)

러브 몬스터 | 이두온 지음 | 창비 | 376쪽 | 1만44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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