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17.7% 65세 이상
걸어서 생활 가능한 동네 살기
고령층 우울감 완충에 큰 효과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도시 중 하나다. 올해 1월 기준 서울 시민 942만4873명 중 65세 이상은 166만5804명이다. 서울 인구의 17.7%로, 2005년 7%에서 18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치솟았다. 곧 65세 인구 비중이 20%에 이르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노인 일상의 대부분은 동네 걷기와 연관된다. 걸어서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고, 공원에 가 산책을 하고, 경로당에 가 친구들을 만난다. 서울시는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보행 복지’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걷기에 대한 도움이 정책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노인은 어느 시점까지 스스로 걸어서 동네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 시점을 넘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동네에서 지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노인이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보행복지를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연구들에 따르면 노인들의 동네 살기는 고령화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인 우울감을 완충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는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이 나가서 밥을 사 먹고 싱싱한 야채를 고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할 만한 해외 보행복지 사례로는 일본을 꼽았다. 박 교수는 "일본은 거동이 쉽지 않은 노인이 밖으로 나와 동네를 걷게끔 도와줄뿐더러 직접 장을 볼 수 있도록 하고 물건을 판 상점을 지원한다"면서 "그저 도시락을 갖다주는 우리의 1차원적 복지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제자들과 함께 마포구 망원동 노인들의 걷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보행량, 활동 반경, 보행 속도 등 정량적 데이터를 모아 노인 걷기 행태를 파악하는 중이다. 그는 "길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추적해보니 동네 설계를 달리해야 하겠다는 실마리들을 꽤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시간은 많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은 싼 물건이 있다면 10~30분을 걸어서라도 찾아간다. 하지만 중간중간 앉아서 쉴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노인들은 생각보다 멀리 움직이는데 쉼이 필요하다"며 "데이터를 모아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쉴 만한 곳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행복지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또 하나의 요소로는 ‘흥미’를 꼽았다. 박 교수는 "단순히 많이 걷게 만드는 것이 최상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흥미롭게 걷기가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 연구를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이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서울시가 방대한 양의 교통과 이동 관련 데이터를 공개한 만큼 미래 서울 도시 정책은 이를 활용한 연구 기반 위에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현 교수는 2004년 가을학기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재직하며 도시·도시설계 분야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대로 오기 전에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건축도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계획스튜디오, 도시디자인정책, 가로환경 관련의 교육과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교에서 시애틀 도심부의 보존과 재개발에 관한 논문으로 도시설계·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레곤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보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계획학 석사학위와 건축공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국책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의 초대 원장 임기를 2021년 6월에 마쳤다. 주요 저술로는 ‘동네 걷기 동네 계획’, ‘아이러니 서울 길, 다섯 이야기’, ‘세종살이 1년 도시읽기 1년’ 등이 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