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못 받는 정부의 에너지 지원정책
지원 대상인데 "에너지바우처 처음 들었다"
취재기자에게 "나도 지원대상이냐" 묻기도
전문가들 "신청주의 복지 시스템의 한계"
[아시아경제 세종=송승섭 기자, 공병선 기자, 황서율 기자] 서울 종로3가역 3분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돈의동 쪽방촌. 이곳에 거주중인 홍성환씨(71)는 겨울 한파를 견뎌내기 위해 집에서도 두터운 패딩점퍼를 껴입는다. 도시가스가 있지만 난방비가 과도하게 나오면 내야할 추가비용이 걱정이다. 홍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아시아경제 확인결과 에너지바우처 지원대상자에 속했지만 “난생 처음 들어본다”며 “주민센터에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원석씨(71·가명)는 “가스보일러를 쓰지 않아서 나는 에너지바우처 대상자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며 “겨울에 차가운 방에서 차가운 물로 씻는 것도 적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너지바우처는 도시가스 뿐 아니라 전기·지역난방 할인이 가능하고, 국민행복카드를 이용하면 등유·LPG·연탄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정책을 제대로 몰라 정부의 에너지 지원정책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2일 아시아경제가 서울시 내 쪽방촌 일대 3곳(돈의동·영등포동·동자동)을 돌아본 결과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제대로 알지 못해 혜택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이 상당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몰라서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홍보부족과 관할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지원 사각지대가 형성돼 있었다.
지원대상자인데 몰라서 혜택 못 받는 취약층
이날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에서 만난 이순연씨(45)도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처음 들어봤다”고 얘기했다. 코와 팔을 다쳐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이면서 생계급여를 받고 있어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올 겨울 난방비가 진짜 많이 나왔다”며 “기름을 사서 4만원인가로 버티는데 이번엔 너무 추워서 9만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이 취재 온 기자들에게 에너지 바우처 얘기를 처음 듣고 “알아봐야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신분증을 보여주며 “에너지 바우처가 무엇이냐, 나도 지원이 되는 것이냐”고 물어보는 주민도 있었다. 이씨 역시 기자에게 “내가 주민센터에 가야 하는 것이냐”면서 “내가 거기서 무엇을 요청하면 되는 것인지 좀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이 지원대상임에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원 대상자임에도 가스요금 감면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이 지난해 41만2139가구에 이른다. 에너지바우처 혜택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도 13만2200가구다. 2020년에는 4만7180가구, 2021년에는 5만5323가구가 혜택을 놓쳤다.
정부의 에너지 지원제도를 취약계층이 잘 모르는 건 홍보 부족 탓이다. 대통령과 중앙부처에서는 에너지바우처 홍보를 강조하는데, 관할 지자체는 담당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용산구청 측은 ‘에너지바우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에 “(바우처는)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총괄 관리하고 문자 안내도 공단이 한다”며 “신청대상 확정조사를 주민센터에 내리는데 현장에 가는 건 아마 주민센터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취약계층이 에너지바우처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나왔다. 영등포구청 측은 “일괄 안내 문자는 지난해 12월에 보냈다”면서 “쪽방 주민들 중에는 기름·가스와 보일러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신청을 안 하고 있다가 못쓴 사람에게 현금으로 환급하는 걸 많이 받는다”고 얘기했다. 쪽방촌 거주주민들은 ‘에너지바우처를 받고 싶은데 잘 모른다’고 말하는데, 정작 관할 구청에서는 ‘다들 알고 있지만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한 셈이다.
신청주의 복지제도 한계…"주거급여에 난방비 포함해야"
방을 쪼개 만든 쪽방촌 특성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측면도 크다. 일부 쪽방촌은 집주인이 공동 가스보일러를 운영하고, 이를 거주자에게 개별적으로 청구한다. 고지서를 받은 집주인은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오른 난방비를 고스란히 쪽방촌 거주자들이 분담해야 한다. 공과금을 받지 않고 월세만 내는 시설의 경우 집주인이 난방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겨울에도 한파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취약계층이 실질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쪽방촌 주민에게 무료쉼터를 제공하는 드림시티의 우연식 목사는 “쪽방촌 주민과 같은 최하위 약자들 중에는 바우처에 해당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행정의 빈틈을 메우는 게 쉽지 않지만 그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신청주의’ 복지제도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취약계층 지원은 시스템으로 빈틈없이 이뤄져야 하는데, 복지 당사자가 잘 알고 신청해야만 지원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황이 심각해 임시 보전해주는 쪽으로 발표가 된 것 같다”며 “저소득층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제도가 파편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면서 “난방비가 폭등해 새로운 대상자에게 줘야 하는데, 지금 수급자 중에도 사각지대가 있는 판에 신청을 어떻게 장려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거급여와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난방비를 포함시키면 대상자가 지원을 자동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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