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호칭 버리는 재계
최태원은 '토니', 범LG가는 숫자로
[아시아경제 한예주 기자] 삼성전자 는 최근 "유연하고 열린 소통 문화를 위해 경영진·임원까지 수평 호칭을 확대한다"고 내부 공지했다. 가이드라인도 줬다. '홍길동 사장', '임꺽정 팀장' 대신 영어 이름(이니셜·닉네임 포함)이나 '(한글 이름)님'을 쓰자는 것. 이에 따라 삼성전자 직원들은 앞으로 이재용 회장을 'Jay'(영어 이름), 'JY'(이니셜), '재용님'으로 부르게 된다. 본인이 선호하는 이니셜이나 닉네임 등을 내부에 공지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JH', 정현호 부회장(사업지원TF장)은 'HH'라고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딱딱한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4대 그룹 중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첫발을 내디뎠다. 최 회장은 작년 3월 SK텔레콤 인공지능(AI) 사업팀원들과 만나 앞으로 자신을 회장님이 아니라 '토니'라 불러달라고 했다. 토니는 최 회장의 영문 이름이다. '아빠 곰 토니'라는 뜻의 인스타그램 아이디 ‘'파파토니베어(papatonybear)'도 여기서 나왔다.
이는 권위적인 느낌의 기존 호칭보다 편안하고 친숙한 이름이 자유롭고 혁신적인 분위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나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부를 때 본명을 부르지 않고 돌려 부르는 오랜 관습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피휘(避諱) 혹은 기휘(忌諱)라는 것. 자신보다 높은 사람 이름은 발음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 이름이 '홍길동'인 사람에게 아버지 이름을 물으면 "'길'자 '동'자를 쓰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예의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름 대신 숫자를 쓰는 기업도 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면 주인공 송중기가 자신을 '4-2'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벌집 넷째 아들의 차남이라는 이야기다. LX, LS, LF, LIG 등 범LG가 기업집단 직원들이 오너 일가 구성원을 그렇게 숫자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다복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범LG가의 특성을 반영한 조치이기도 하다. 친척이 많아 제사를 지낼 때 순번을 정해 간다는 범LG가는 식구들이 모였을 때 동석한 직원들 입장에선 누가 윗어른인지 구분하기 힘들 수 있다. 숫자로 부르면 항렬을 따지기 한결 편하다는 것이다. 기자나 외부 인사 등에게 설명할 때도 숫자를 많이 이용한다. 예를 들어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고 “그럼 난 6-1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막냇동생으로 6째인 고 구두회 전 예스코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삼성전자는 내부 공지문을 통해 "변화를 향한 길은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지만 방향이 옳다는 믿음으로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바라보게 될 풍경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꾸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조상들이 이름은 기휘했지만 대신 자(字)와 호(號)를 쓴 것처럼 어찌보면 과거를 복기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자는 윗사람이나 친구들이 이름 대신 부르는 호칭, 호는 아래 윗사람 가리지 않고 이름 대신 편하게 쓰는 호칭이다. 이미 IT기업, 스타트업 가운데는 대표를 영어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편하게 대표를 부르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브라이언', 홍은택 대표는 '사이먼'으로 부른다. 말하자면 대기업 회장님들은 요즘 호를 하나씩 만들어 쓰고 있는 셈이다. 과거와 차이점은 호가 한자가 아니라 영어나 한글 혹은 숫자라는 것이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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