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신고받고 출동해도 설득해 검사
유통책 검거도 어려워
[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횡설수설하거나 옆에서 친구가 마약을 했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더라도 간이시약 검사를 하려면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31일 서울 일선 경찰서 형사과 소속의 한 경찰은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검거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현장 압수물 없으면 강제 수사 어려워= 복수의 경찰들은 술 또는 약에 취한 대상자들을 설득하는 것부터가 마약 수사의 시작이라고 얘기한다. 통상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더라도 현장에서 마약 추정 물질이나 주사기 등의 장비가 발견되지 않으면 강제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다. '마약을 한 것 같다', '최근에 마약을 했다고 들었다' 등의 신고에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면 간이시약검사를 진행하지 못한다. 다만 경찰이 현장에서 명백하게 마약 범죄 혐의를 확인했다면 현행범 체포, 긴급체포를 한 뒤 영장을 별도로 받아 강제 수사에 착수하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분명 마약에 취한 상태인데 극구 부인하며 검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상대방이 악감정을 가지고 허위로 신고한 것이다 등의 주장을 하다가 임의동행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신종마약 못 잡는 간이시약= 간이시약기의 성능과 정확도도 문제다. 현재 경찰의 간이시약기로 잡아낼 수 있는 마약은 필로폰, 대마, 모르핀, 코카인, 엑스터시, 케타민 등 6개가 전부다. 신종마약이나 향정신성 성분인 THC 등은 간이시약기에서 걸러내지 못한다. 경찰 관계자는 "신종마약인 감마 하이드록시뷰티르산(GHB)과 향정신성 의약품 등은 발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마약 간이시약 키트 오류 발생 현황'을 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마약 간이시약 키트 오류는 총 8건이 발생했다. 이 중 7건은 시약기에선 양성 반응이 나타났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특히 엑스터시(MDMA) 관련 오류가 많았다. 지난해 서울 강서경찰서와 광주동부경찰서에서 실시한 검사에서도 간이시약검사의 경우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이후 국과수 감정 결과는 음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장소 적발 한계도= 최근에는 자택, 호텔 등에서 마약을 투약하기 때문에 신고 없이는 단속도 어렵다. 지난 28일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술에 몰래 마약을 타 여성에게 마시게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수사받고 있다. 당시에도 몸의 이상 반응을 느낀 여성이 직접 119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유흥업소에 대한 방역 단속이 줄면서 성매매와 마약범죄 적발 건이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상태에선 수사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자진신고 등을 포착해 단순 투약범을 검거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별건 수사 자체는 부담이어서 마약을 염두에 두고 단속을 벌이진 않는다"면서도 "도박, 성매매 관련 유흥업소 단속 과정에서 마약사범을 적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에는 '이메일 협조' 요청뿐= 마약 공급책 검거는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형사국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마약 집중 단속을 벌여 5702명을 검거해 791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38.2% 증가했지만, 대부분 단순 투약범에 그쳤다. 경찰청은 텔레그램을 통해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전문 수사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한 수사 지휘는 사실상 전무하다. 일선서 형사과 직원들은 텔레그램 공식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텔레그램으로부터 답이 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모든 건에 대해 유통책 검거를 목표에 두고 수사하긴 어렵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구하는 것 외에 특별한 수사기법은 없다"며 "청 단위에서도 특별한 지침은 따로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휴대폰 포렌식 작업 등을 통해 다른 증거물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첩보에 근거해 마약 범죄가 분명한 경우에는 현장에서 적극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마약 범죄가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함정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법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10대~30대 사이 마약 범죄가 늘어난 것과 관련해선 공익적 홍보와 함께 의무 교육 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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