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면탈 열 중 여덟은 체육선수
고위공직자 자녀도 포함돼 있어
고의 손목 수술·다한증 위장 등
공정병역심의위원회 조치 하세월
단독[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황서율 기자] 병무청이 최근 5년간 체육선수와 고위공직자 자녀 등 병적 별도 관리 대상자 19명을 적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고의로 손목 인대를 손상하거나 부작용이 있는 약물을 일부러 복용하는 식으로 현역 입대를 피했다.
20일 아시아경제가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받은 병무청의 '병역 면탈 적발 실적 현황'에 따르면, 병무청은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체육선수 16명, 고위공직자 자녀 2명, 대중문화예술인 1명 등 총 19명을 적발했다. 병무청은 병역법 제77조4에 따라 체육선수, 4급 이상 고위공직자 자녀, 대중문화예술인, 고소득자 자녀(연간 종합소득 10억원 이상) 등을 병적 별도 대상으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고의 손목 수술이 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정신질환 5명, 고의 체중조절 2명, 청력장애 위장 2명, 기타 3명이었다. 김 의원은 "병역 비리가 매년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병역 면탈 시도 처벌 강화와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손목 자해·정신과 증상= 체육선수 A씨는 2020년 과도하게 손목을 꺾거나 돌려 고의로 인대를 손상한 후 손목 수술을 했다. 이후 정형외과 질환 4급 판정을 받고 병역을 피했다. 식사량을 늘려 신장 체중 4급 판정을 받은 체육선수 B씨는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고위공직자 자녀 C씨는 손가락에 물 묻은 밴드를 붙이고 다한증을 위장해 피부과 질환 4급 판정을 받았다. C씨는 앞서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의 병역 처분을 받자, 우울증을 이유로 병역처분변경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고위공직자 자녀 D씨는 비뇨기과 질환을 야기하는 약물을 복용해 비뇨기과 질환이 있는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줄줄이 기소유예·불기소= 최근 재판에 넘겨진 병역 면탈자들은 대부분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정신과적 증상을 허위로 호소해 정신의학과 질환 4급 판정을 받은 체육선수 4명 중 3명은 기소유예를, 1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작년에는 체육선수와 대중문화예술인이 적발돼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병역법 위반 혐의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해당 혐의는 적극적인 속임 행위와 목적성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는 "원래 아픈 사람이었는지 일부러 손상을 한 것인지 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의료 전문가가 개입해 진단서를 끊어주거나 심의 과정에서 불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면 적발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法개정 하세월…후속 조치 미흡= 2018년 공정병역심의위원회가 출범됐지만 제도 보완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공정병역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심의위는 2020년 12월 다수의 위원들과 토론 후 관리 대상에 바둑, 당구, 볼링 등을 포함키로 했지만 관련법은 2년 뒤인 지난해 11월 발의해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다. 병무청 관계자 "볼링, 복싱, 바둑 등 추가 필요 종목 검토 등은 법안 진행 중이므로 실제 추가 종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비지정 프로단체 선수의 경우 학교, 실업팀 소속 아마추어 활동 시에는 병적 별도 관리 대상에 포함되나 프로선수로 전향 시에는 관리가 중단되는 미비 사항이 지적됐지만 조치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관리도 장기 검토 과제로 남겼다. 심의위는 자녀 관리 기간 퇴직 후까지 확대, 현직 공무원의 조카 관리 등을 논의했으나 '기본권 침해' 이유로 추가 조치를 실시하지 않았다. 제도 보완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별도 관리 대상자는 줄고 있다. 2018년 3만3501명에서 지난해 2만7756명으로 4년 새 17% 감소했다. 병무청은 "소득세법 개정으로 고소득자 자녀 관리 대상 인원이 기존 대비 약 3분의 2 감소한 영향"이라고 밝혔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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