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비자물가 5.1% 상승
고물가 체감하는 쪽방촌 주민들
재개발 문제도 쪽방촌 사람의 고민
"용산참사 같은 일 벌어질까 두렵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천은 찬바람만 불었다. 전인화씨는 그 공원을 가로질러 자신이 거주하는 쪽방을 향했다. /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머리 아파요." 지난 17일 전인화씨(67)는 텅 빈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공원을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그는 이번 달 쪽방 월세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당뇨와 척추협착증이 함께 찾아오면서 갑작스레 나가는 돈이 늘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 90만원 가운데 월세로 31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근근이 버틴 전씨였다. 갑작스런 의료비에 물가까지 오르는 바람에 먹는 양을 줄여도 지출이 커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전씨는 "좋아하는 초콜릿 맛 과자가 있는데 최근 3000원에서 3500원까지 올랐다"며 "물가가 오르면서 먹고 싶은 것도 참았는데 몸까지 아파 월세를 못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고물가가 전씨를 비롯한 쪽방촌 주민들을 직격했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5.1%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도 만만하지 않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3.5%로 제시했지만 실질적인 서민의 지갑과 관련된 전기 및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상승 압력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씨 외에도 쪽방촌 주민들도 높아진 물가를 실감 중이다. 강명자씨(71)는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휴지 가격이 1년 사이에 1만5000원 정도 올랐다. 고급 휴지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시장 볼 때마다 물건들이 비싸 먹는 양을 줄이고 있다. 남편과 함께 쪽방에 사는데 우울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재개발 문제까지…"쫓겨나면 막막하다"
쪽방촌 주민들을 짓누르는 것은 물가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누워지낼 곳을 정할 재개발 문제도 머리 아프게 한다. 전씨가 공원 옆에서 지인을 만나자 쪽방촌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재개발 이야기를 꺼냈다. 전씨가 "공원 옆 노란색 건물에 사는 한 할머니가 말하던데 서울시청 직원이 어느 날 찾아와서 재개발 이후에도 남을지 물었다고 하더라"고 말하자 지인은 "항상 그렇듯 유언비어만 돌지 또 재개발이 밀릴 것이다"며 서로 옥신각신했다.
2020년부터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된 동자동 재개발은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재개발은 건물주들의 강한 반발에 막혀 있다.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쪽방 건물주들은 쪽방촌 주민들을 수용하고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공공개발 방식보다 민간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개발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게 건물주들의 입장이다.
쪽방촌 사람들은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함을 호소했다. 전씨는 "쪽방촌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엄연히 우리의 공간이기도 하다"며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만약 서울시나 정부에서 억지로 철거하고 내쫓는다면 이곳에서도 용산참사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고 덧붙였다. 용산참사란, 2009년 재개발 보상 문제로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총 6명이 사망했다.
전씨가 지인과 말씨름하던 와중에 한 공무원이 동네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였다. 쪽방촌 주민이 쪽방상담소에 찾아오면 한복을 입고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때야 전씨는 설날이 코앞까지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씨는 다시 절뚝거리며 자신이 사는 쪽방으로 들어갔다. 한겨울에도 집주인이 보일러를 설치해주지 않아 찬물밖에 안 나오고 헐거운 창틀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지만 그래도 그에겐 소중한 공간이다. 전씨가 말했다. "지금까지 찬물만 나오는 집에서 혼자 설 명절을 지냈지만 올해만큼 심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없었어요. 하루빨리 고물가나 재개발 문제로 인한 고민들이 날아갔으면 좋겠어요."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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