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부정한 청탁'… '현안에 대한 인식과 양해' 존부
검찰, '자발적 후원' 아니었다고 판단… 진술·증거 확보한 듯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성남FC 후원금'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2018년 6월 바른미래당이 이 대표를 제3자뇌물죄로 고발한 지 무려 4년 6개월 만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미 경찰이 수년 전에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다시 꺼내 수사한다'며 무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경찰이나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 제3자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충분하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적용된 제3자뇌물수수죄의 성립 여부는 각종 인허가 등 기업의 현안에 대한 상호 인식과 양해 하에 후원금이 오갔는지, 즉 '묵시적 청탁'의 입증에 달려 있다.
수억~수십억원 후원금 유치 후 현안 해결돼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성남FC의 구단주로 있으면서 기업 현안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유치했다는 게 골자다.
실제 성남 일화 축구단이 시민축구단 성남FC로 바뀌면서 이 후보가 구단주가 된 뒤 두산건설, 네이버, 농협은행, 분당차병원, 현대백화점, 알파돔시티 등 성남시 관내 6개 기업은 2015~2017년 후원금·광고비 등 명목으로 총 160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성남FC에 제공했다.
검찰은 이들 기업이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낸 후원금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가 인허가권을 가진 각종 민원 해결의 대가라고 보고 있다. 가령 두산건설의 경우 2015년 11월 분당구 정자동 종합병원 부지(3000평)를 상업용지로 용도변경 받아 막대한 이익을 봤다. 그밖에 나머지 기업들도 제2사옥 건축허가(네이버), 성남시 금고 연장(농협은행), 분당경찰서 부지 용도 변경(차병원) 등 현안 해결과 후원금이 대가 관계에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제3자뇌물죄 '부정한 청탁'이 핵심요건
형법 제130조(제삼자뇌물제공)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조항의 표제는 '제3자뇌물제공'으로 돼 있지만, 뇌물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않고 제3자에게 뇌물을 주도록 만들었을 때 공무원은 '제3자뇌물수수죄'가, 뇌물 공여자는 '제3자뇌물공여죄'가 각각 성립한다.
그리고 제3자에게 공여된 뇌물 가액이 1억원을 넘을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2조에 따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받게 되고, 뇌물 가액의 2~5배의 벌금을 병과받게 된다.
가족이나 '경제적 공동체'처럼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경우에는 제3자뇌물죄가 아니라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삼성이 제공한 말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이 받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제3자뇌물수수죄가 아닌 뇌물수수죄가 인정됐다. 이번 사건의 경우 성남FC가 이 대표와 별개의 주식회사였다는 점에서 제3자뇌물죄 성립이 문제될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제3자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뇌물죄 성립에는 필요 없는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야 한다. 다만 대법원은 제3자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부정한 청탁'은 반드시 위법하거나 부당한 것이 아니더라도 "직무집행을 어떤 대가관계와 연결시켜 그 직무집행에 관한 대가의 교부를 내용으로 하는 청탁이라면 '부정한 청탁'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또 제3자가 뇌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는지 여부는 범죄 성립을 위한 요건이 아니다.
한편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가 한푼도 받은 게 없다'는 주장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는 근거로 들고 있지만, 제3자뇌물수수죄에서 제3자에게 공여된 뇌물 중 일부라도 공무원에게 전달될 것은 성립요건이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 2006년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SK텔레콤으로부터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선처를 부탁받고 특정 사찰에 10억원의 시주를 하도록 한 사건에서 제3자뇌물수수죄 유죄를 인정하며 "어떤 금품이 공무원의 직무행위와 관련해 교부된 것이라면 그것이 시주의 형식으로 교부됐고 또 불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뇌물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기업 간 '현안에 대한 인식과 양해' 입증이 관건
검찰은 당시 각 기업들이 처해 있던 상황이나 이례적으로 큰 후원금 액수, 후원금 유치 이후 이뤄진 성남시의 조치 등을 종합해서 판단할 때 자발적인 후원이 아니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후원금을 낼 여력이 없었거나, 후원금 기부 요청을 받고 고사한 정황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검찰은 관계자의 진술 외에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공문 등 후원금과 각 기업의 현안 해결과의 대가관계를 뒷받침할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대법원이 밝힌 '부정한 청탁'에 관한 입장에 비춰볼 때 이 대표에게 제3자뇌물수수 혐의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 A씨는 "청탁을 받고 돈을 주고받았다고 자백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명시적인 부정한 청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라며 "결국은 '묵시적 청탁'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부금 사례 등을 통해 '현안이 존재하고 현안에 대한 인식과 양해가 있는 경우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대가성 있는 돈을 주고받은 경우 제3자뇌물죄가 성립한다'는 법리가 정립됐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2011년 모 지역 구청장이 관내 공사 인허가와 관련해 묵시적 청탁을 받고 5억원 상당의 누각을 구청에 기부채납하도록 한 사건에서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해 당사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어야 한다"며 "따라서 그러한 인식이나 양해 없이 막연히 선처해 줄 것이라는 기대나 직무집행과는 무관한 다른 동기에 의해 제3자에게 금품을 공여한 경우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이는 공무원이 먼저 제3자에게 금품을 공여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여 달리 볼 것도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에서는 두산건설 등 후원금을 기부한 기업과 이 대표 사이에 현안 해결의 대가로 후원금을 기부한다는 사실에 대한 상호 인식과 양해가 있었는지가 제3자뇌물죄 성립을 좌우할 핵심 포인트다.
검경 '부실수사' 문제됐던 사건… 이 대표 대응 주목돼
문재인 정부 시절 애초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2018년 6월부터 2021년 9월까지 무려 3년 3개월 동안 지연 수사를 벌인 뒤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고발인의 이의신청에 따라 사건을 검토한 성남지청 수사팀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였던 박은정 전 성남지청장은 계속 이 같은 수사팀의 의견을 반려했고, 결국 박하영 당시 성남지청 차장검사는 박 전 지청장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사표를 내야 했다. 박 전 지청장은 이 일로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수사를 받고 있다.
상급기관인 수원지검의 지시에 따라 성남지청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경찰은 보완수사를 진행했지만 두산건설의 사례만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의 후원금에도 대가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이며 사건을 전면 재수사해왔다.
앞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의 서면조사에도 사실상 응하지 않았던 이 대표가 이번에도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며 진술을 거부할지, 아니면 구체적인 진술을 통해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지 주목된다. 이 대표의 진술 태도에 따라 검찰이 확보한 진술이나 물증을 어디까지 제시해 이 대표를 압박할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10일 이 대표는 10시30분으로 예정된 조사에 앞서 성남지청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번 사건 대응을 맡아온 김종근 LKB 대표변호사가 판사 출신인 점에 비춰 또 다른 변호사가 함께 조사에 입회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에서는 유민종 형사3부 부장검사가 직접 조사를 맡을 예정이다.
한편 이 대표는 대장동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이 대표의 핵심측근들이 이미 구속기소된 만큼 검찰의 대장동 수사도 이 대표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와 관련해 검찰이 성남FC 사건을 먼저 마무리하고 대장동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지, 아니면 성남FC 사건에 이어 대장동 사건에 대한 조사까지 벌인 뒤 비슷한 시기 동시에 사법처리에 나설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검찰의 판단대로라면 성남FC 사건의 수뢰액이 커 성남FC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앞서 노웅래 민주당 의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상 체포동의안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감수하고 검찰이 이 대표의 신병처리에 나설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중국 때문에 못 살겠다…920% 관세 폭탄 때리자"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