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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얼어붙은 연말 건설업 인력시장…"일 없어 다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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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역 인력시장, 서울역 인근 인력사무소 일대 현장 가보니

26일 오전 5시2분께 서울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일용직을 구하는 인부들이 집결지로 모이고 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26일 오전 5시2분께 서울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일용직을 구하는 인부들이 집결지로 모이고 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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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최태원 기자] “원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일자리를 찾아가죠. 그런데 요 근래는 일주일에 한 번 가거나 아예 못 갈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일당도 원래는 20만원을 받는데 요즘은 10만원대로 받기도 합니다”(일용직을 구하러 온 중국동포 이모씨(60))


26일 오전 4시42분께 찾은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영하 6도의 날씨에 밀리터리 무늬 패딩과 목티, 비니 등 방한용품으로 완전무장한 인부들 80여명이 남구로역 앞 집결지에 모여 있었다. 인부들의 숫자는 오전 5시가 되자 급격히 늘어 300여명 가까이 됐다.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공간에는 추위 속에서 대기하는 인부들이 내뿜는 담배연기와 말소리만 자욱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집결지 부근에는 질서유지를 위해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온 공공근로 종사자들과 경찰들이 배치되기도 했다.

몇몇 인력사무소가 늘어서 있는 서울역~삼각지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않은 새벽 5시께부터 건설 현장 일거리를 찾기 위해 방한용품으로 꽁꽁 몸을 둘러싼 수십명의 중장년들이 몰려들었다. 이 곳에 나온 인부들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19만원 많게는 25만원 정도를 일당으로 받는다.


오전 5시43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인부 모집이 끝난 승합차가 건설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오전 5시43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인부 모집이 끝난 승합차가 건설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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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부들이 추운 날씨에도 나왔지만, 정작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남구로역 인근에서는 연신 인력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팀장님, 저 오늘 돼요?”라며 자신의 일자리를 확인하는 중국 동포 인부들도 볼 수 있었다. 50년 동안 기공 일용직이었다던 안모씨(66)는 “50년 평생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며 “날도 춥고 그러니까 일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7명!” 손짓을 하자 7명의 인부가 모여 대기 중인 승합차로 향했고, 모집이 끝난 승합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무리씩 사라지면서 5시42분에는 200명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인력시장을 얼어붙게 한 건 엄동설한의 날씨보다 더한 건설경기 침체인 듯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미분양 주택은 10월 말 기준 총 4만7217호로 전월대비 13.5% 증가했다.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현장은 섣불리 첫 삽을 뜨지 못하고, 건설사 자체가 휘청하는 추세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같은 달 건축 착공은 전년 동기 대비 35.4% 감소했으며, 부도업체는 10월까지만 13개사에 달한다. 지난해는 12월까지 누계 부도업체 수가 12개사였다.

오전 6시25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인부들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혹시 모를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오전 6시25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인부들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혹시 모를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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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구한 인부들은 식사를 할 시간인 6시01분. 남아있는 100명 남짓의 인부 중에는 실제로 건설경기 침체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는 경우도 있었다. 이모씨(58)는 원래 고정적으로 일주일에 3번씩 나가는 건설현장이 있었지만 이날 갑작스럽게 인력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하청에서 일을 하는데 원청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면서 “이런 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일인데 그게 오늘인가 보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내일은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해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처음 왔다는 전모씨(56)는 강원도에서 온 벽돌쌓는 인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강원도에서 개인적으로 일이 들어오면 그 일을 하지만 올 들어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아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전씨는 “여기는 5시30분이면 일자리 모집이 다 끝난다”며 “오늘은 집에 가야할 것 같다”고 멋쩍어 했다.


오전 7시30분께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한 인력사무소. 오전 5시께 나온 인부들이 일감을 기다리며 신문을 읽고 잡담을 나누는 등 소일거리를 하고있다/사진=최태원 기자skking@

오전 7시30분께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한 인력사무소. 오전 5시께 나온 인부들이 일감을 기다리며 신문을 읽고 잡담을 나누는 등 소일거리를 하고있다/사진=최태원 기자s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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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25분이 되자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수십 명의 인부들이 남아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대기시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고 몸을 이쪽 저쪽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중국동포 이모씨(60)는 “6시30분까지는 기다려 볼 요량”이라며 “일을 못 구하면 오늘은 그냥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서울역~삼각지 일대 역시 오전 7시가 넘어서까지 인력사무소를 지키는 이들이 수십명이었다. 이들은 신문을 보거나 우두커니 서서 휴대폰을 보는 등 소일거리를 하다가도 답답한듯이 거리로 나와 담배연기를 길게 늘어뜨리기도 했다. '오늘은 공쳤다'는 말이 나오는 시간인 오전 7시30분. 일용직을 구하러 온 신창석씨(62)는 "5시20분에 나와서 내내 기다리는 중이지만 요새 통 일을 잡을 수가 없다"며 "일이 없으면 그냥 하루종일 쉴 수 밖에 없다. 왕복 버스비만 날리는 셈"이라는 말을 남긴채 집으로 향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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