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에 구상권 청구 못해…대위변제 멈춤
원희룡 장관 "전세피해 없도록 최선 다할 것"
[아시아경제 노경조 기자] 수도권에서 1000채 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임대한 속칭 '빌라왕'이 숨지면서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빌라왕으로 불린 40대 김모씨가 지난 10월 사망한 뒤 전세금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들에 대한 대위변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위변제는 집주인이 계약기간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가입자(세입자)에게 지급하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인 김씨가 사망한 탓에 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대위변제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임대인 사망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전세금보증보험의 제도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 소유 주택 세입자 중 최소 200명이 HUG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위변제를 위해서는 4촌 이내 친족이 상속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씨가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62억원을 체납하면서 소유 주택이 압류됐고,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씨의 유일한 혈육인 부모도 상속 의사가 불명확한 상황이다. 부모가 상속하지 않는다면 세입자들은 법원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지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HUG 관계자는 "규정 때문에 대위변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김씨 부모가 상속받도록 설득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20년부터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갭 투자(전세를 낀 매매) 방식으로 사들여 올해 6월 기준 보유 주택이 1139채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올해 4월 온라인에서 피해자 카페를 만들었다. 현재 가입자는 450여명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은 상속 절차가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 현재 사는 곳에서 계속 지낼 수 있고, 전세대출금도 보증 연장이 가능해 당분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전세 피해 지원센터에서 법률 상담은 물론 임시 거처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전세보증금을 더 낮은 이자율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택도시기금에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서민들이 전세 피해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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