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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마포구 작은도서관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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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마포구 작은도서관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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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는 관내의 ‘작은 도서관’ 9개를 폐관하기로 했다. 장서 1000권, 열람석 6석 이상의 소규모 도서관들이다. 나는 이 소식을 강원도의 사서 교사에게 들었다. 그는 나에게 답답하다고 말했고 아이들에게 책 읽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해야 하느냐는 자조를 곁들였다.


이것은 아무래도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의지인 듯하다. 그는 14일에 올라온 유튜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마포를 떠나는 이유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못 가 그렇다. 홍익대, 서강대 총장한테 동냥하러 갔다. 그들이 지역 주민들 문턱을 낮춰주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마포구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 좋게 마포중앙도서관이 가까웠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책을 보러 가거나 시험공부를 하러 가거나 했다. 그렇게 자주 갔던 것은 아니지만 집 근처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었다. 책을 쌓아두고 읽다가 몇 줄 읽지 않고 반납하기도 했고, 사실 라면이나 떡볶이를 먹으러 나갔던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독서실이 주지 못하는 설렘이 분명히 있었다. 그 안에서는 자유로웠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마포 중앙도서관은 여느 대형 도서관들이 그러하듯 훌륭한 공간이다. 장서가 22만여종에 이르고 복합문화공간이라 할 만큼 많은 시설이 입주해 있다. 그것 하나만 남겨두고 작은 도서관들을 모두 폐관하더라도 별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모든 마포구민이 쉽게 이용할 수는 없다. 사실 집에서 걸어가서 상호대차 신청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필요하다. 육아에 바쁜 나의 아내도, 그러한 처지의 나의 친구들도 집 근처의 작은 도서관을 주로 이용한다. “엄마 잠깐 책 좀 빌려올게” 하고 아이들을 두고 다녀올 수 있는 도서관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마포구청장은 학생들을 대학에 잘 보내기 위한 열람실이 더 필요하다고 했으나 그건 그러한 공간을 따로 더 만들거나 작은 도서관을 지원해 열람실 공간을 별도로 확장하면 될 일이다. 그게 작은 도서관을 폐관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마포는 책과 관련해서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이곳이 문화의 최전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첫 책은 마포구에 자리 잡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왔고, 가장 최근의 책도 마포구청 바로 옆에 자리한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나왔다. 지금은 많은 출판사가 파주로 이전했으나 어린 시절 책을 읽다가 판권지를 보면 많은 출판사의 본사가 마포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마포구에는 작가들도 많이 산다. 특히 서교동에서 길을 걷다가 “작가님!”하고 부르면 길을 걷던 사람들의 절반이 뒤를 돌아본다는, 그리고 “편집자님!”하고 부르면 나머지 절반이 뒤를 돌아본다는 농담이 있다. 그래서 마포구가 앞장서서 작은 도서관뿐 아니라 도서관에 대한 예산을 축소한다고 하는 그 결정이 더욱 슬픈 것이다. 도서관을 줄이고 열람실을 더 지으면 살고 싶은 동네가 될 것이라고 하는 그 말은 얼마나 마포답지 않은 말인가.

나는 작은 도서관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당신이 걸어서 5분이면 갈 만한 도서관과 열람실을 가진 그런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학생들이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물론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여기저기 있는 작은 도서관을 더 지원해서 열람실 공간을 확장하길 바란다. 그러한 세금은 충분히 더 내고프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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