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표시 제한 기능 쓰고 하루 4시간 수십 차례 연속 전화
한국여성변호사회 “법 기술적 해석 … 스토킹 피해 맥락 간과”
[아시아경제 김정완 기자]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에 검찰이 불복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검은 최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4)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전 연인 B씨에게 반복해서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휴대전화 번호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는 '발신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다. 또 영상통화를 시도했고, 하루에 4시간에 걸쳐 수십 차례 연속 전화를 건 적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가 전화를 계속했어도 B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다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A씨가 전화를 걸었지만, B씨가 통화를 하지 않았다"며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B씨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며 "A씨가 B씨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그 근거로 17년 전인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는 스토킹법이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던 시기였다. 판례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은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다"라며 "반복된 벨 소리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줬더라도 법 위반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스토킹법과 유사한 법 조항의 오래된 판례에 근거한 탓에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한 스토킹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만 해석해 스토킹 피해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또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통신망법과 스토킹범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며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 문제 되는 정의 규정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피해자 관점의 판단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완 기자 kjw1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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