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끝났지만 코로나19 여파는 지금도 골목 골목에 남아 서민을 괴롭히고 있다고. 경제성장률과 국민 소득증가율은 점점 낮아지는 중이고 이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20%가 넘는 금리를 내며 살기 어렵다고. 대부업체들은 법정최고금리를 미끼로 저신용자를 갈취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막아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그들은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금리상승기에는 법정최고금리가 오히려 저신용자들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고. 자금 조달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높아지면서 대부업체들이 역마진 위기에 처하고, 이로 인해 저신용자들에게 신용대출을 아예 끊거나 만기연장을 안해준다고.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면서 돈 빌릴 데 없는 사람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불법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고.
시계를 돌려 2020년 11월, 법정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인하하기로 결정한 당정(黨政)회의. 여당 원내대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다. 저금리 상황에서 최고금리 24%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당시엔 이 말이 설득력을 얻으며 금융위원회도 발빠르게 인하 조치를 취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2년 후에 기준금리가 3%가 될거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그때 결정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잘못된 건 상황이 180도 달라졌는데도 아무말도 안하는 현재 당정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 즉 여전채 금리와 수신금리가 상승하고 → 대출금리도 그만큼 뛰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한번 내린 최고금리를 다시 올릴 생각을 전혀 안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 20%인 법정최고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2금융권에서도 돈을 못 빌리는 저신용 차주가 약 100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절벽에 몰린 100만명을 구하자고 4300만명에게 욕먹을 수는 없다는 게 정치권의 속내다. 정책금융으로 지원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뭘 하려고 대출했는지도 모르는 저신용자들에게 세금을 쓰자는데 무작정 동의할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은행들도 속이 탄다. '대출의 문법'이 깨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은행 리스크담당 임원은 초비상 상태라고 했다. "2금융권이 법정최고금리 탓에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못해주고, 고신용자에게 대출을 집중하면 시중은행→저축은행→대부업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무너진다. 돈을 못빌리는 저신용자 연체율이 급증하면 금융권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법정최고금리가 정치의 문제라면 결국 정치로 풀어야 한다. 단어 선택을 달리해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참고할 만한 해법도 나왔다. "시장평균금리에 따라서 법정최고금리가 오르내리는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김미루 KDI 연구위원). 인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도 합리적인 금리 조정이 가능하다. 제2금융권에서 먼저 도입 목소리를 높이고 금융당국이 정치권에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지불식간에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지 않으려면 금리인하가 늘 선(善)이라는 고집부터 버려야 한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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