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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공권력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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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공권력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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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나쁜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내 잘못일 수도 있고, 부하직원 혹은 상사의 잘못일 수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있고, 그냥 운이 나빠서 결과가 나쁠 때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더 그렇다.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마주 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게 인간 심리다. 고백하자면 실패(혹은 실수)의 원인을 파악하면서 ‘내 잘못이 없나’부터 살핀 적이 많다. 보통 건강한 조직이라면 책임자급이 솔선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 책임을 벗어나려면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상사가 책임을 미루면 부하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넘어갈 수 있다면) 유야무야 넘어가는데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면피 분위기가 조직에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별 것 아니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거다.

건물 안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압사당하는 참담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 제보를 받은 동료 기자는 처음엔 ‘핼러윈’ 퍼포먼스이거나 장난 제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좁은 공간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좁은 땅덩이에서 뭔 일만 있으면 복작복작 모이는 나라이지만 지금껏 이런 사고는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였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통제(공권력이든, 자체 경비든)가 이뤄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는 매년 적지 않은 인파가 몰렸다. 딱히 주최가 있는 행사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행사 주최가 없는 곳에 몰리는 사람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정답은 (본인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공무원이다. 헌법 제7조 1항에 따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가 기관에 공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 공권력을 움직이는 높은 분들의 발언은 전형적으로 면피에 급급한 내용이다. 치안과 공공질서를 담당하는 경찰의 지휘권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인력을 배치했어도 해결하기 어려웠다"고 발언해 비난을 자초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사과를 했지만 경찰과 소방인력 배치 미흡이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라며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기자 회견에서 “주최자가 좀 더 분명하면 그러한 문제들이 좀 더 체계적 효과적으로 이끌어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들이 없을 때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인파 관리)’에 대한 현실적 제도적 개선점이 있다”고 답했다.

윗선이 면피에 치중하자 실무선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현장에서 급작스러운 인파 급증은 못 느꼈다고 한다. 판단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인도와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던 배경에 대해 경찰청과 국토부 당국자가 답변을 미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희생양 삼으라는 게 아니다. 공권력이 왜 존재하는지 공권력의 정점에 있는 분들이 모르는 것을 탓하는 것이다.


전필수 증권부 부장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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