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밀어 공간 만들고, 출입문에 붙어 열차 탑승
CNN “韓, 붐비는 인파에 익숙해 … 경각심 높여야”
[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 압사 사고로 평소 인파가 붐비는 현장에서도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는 좁은 공간에 인파가 갑작스레 불어나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 당시 4m 내외의 좁은 폭과 45m 길이의 내리막길 공간에 최소 수만명이 몰려 20~30분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됐다. 최소한의 공간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압력의 규모가 커지면서 압박성 질식으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몸무게 65kg의 성인 100여명이 한꺼번에 힘을 가했을 때 압력이 최고 18t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서울 지하철 9호선 혼잡도 179%
군중 속에 갇혀 압박을 받는 경우는 축제나 공연 등 특별한 장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출퇴근 시간만하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많은 인파가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몰리면서다.
2020 철도통계연보 도시철도 수송실적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노선 중 최고 혼잡도를 기록하는 시간과 구간은 각각 오전 8시와 9호선(노량진~동작 구간)으로, 혼잡도는 179%다.
혼잡도는 전동차 한 칸의 표준 탑승 인원(160명)을 기준점(100%)으로 삼았을 때 실제 탑승 인원을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칸별 혼잡도는 여유(80% 이하)·보통(80%~130%)·주의(130%~150%)·혼잡(150% 이상)의 4단계로 구분되며, 지하철 혼잡도가 150% 이상에 달하는 혼잡 단계에 이르면 열차 내 이동이 어려워진다. 혼잡도 179%는 전동차 한 칸에 160명보다 126명 더 많은 286명가량이 탔다는 뜻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엔 출퇴근 지하철이 더 많은 인파로 붐볐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도시철도공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장 혼잡한 시간인 출근 시간대(오전 7시 50분~ 8시 20분)에 9호선(염창~당산 구간)은 한 칸에 약 380명 정도가 탑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할당 인원인 160명보다 무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외에 2호선(사당~방배 구간)과 7호선(군자~어린이대공원 구간)의 혼잡도도 각각 202%와 172%에 달했다.
실제로 수도권에서는 대중교통 내 높은 밀집도로 인해 출퇴근길을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서서 가는 승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차 버린 열차가 도착했음에도 몸을 내던져 열차에 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람을 밀고 들어가 억지로 공간을 만들거나, 출입문 상단을 붙잡고 겨우 차 안에 몸을 싣는 식이다.
온몸이 꽉 낀 탓에 팔 하나 제대로 펼 수 없는 상황에서 열차가 급정거할 땐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거나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포착된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선 지옥같은 지하철이라는 의미로 '지옥철'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다.
◆ 안전 시스템 붕괴된 이유 규명해야
이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지옥철과 같은 상황이 이번 이태원 참사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온다. 인파가 몰리는 현상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탓에 대규모 인파로 붐비는 공간에서의 위험성을 간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줄리엣 카이엠 미국 재난관리 전문가는 CNN에 "서울 시민들은 밀집 공간에 익숙하다"며 "이러한 성향 때문에 거리가 인파로 가득 찬 상황에서 경각심을 크게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연합뉴스를 통해 "만원 지하철 등 현장은 실제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공포감이 들 정도"라며 "일상이 되다보니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돼있고 그 안에서도 교통 등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우리는 어느새 그런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평소 지하철이나 역대 핼러윈 행사 등에서도 사람이 많이 몰렸지만 큰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던 만큼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안전 시스템이 붕괴된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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