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성분 낮은 'HEMP'·'CBD' 등
이미 뇌전증 치료제로 쓰이고 있어
정부도 의료용 대마 산업 활성화 추진
HLB·화일·메디콕스·유한 등 나서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마약으로만 여겨져 왔던 대마초의 치료 목적 사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시사한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의료용 대마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채비에 나서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의료용 대마의 핵심은 낮은 환각성이다.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향정신성 성분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이 매우 낮은 0.3% 이하로 함유된 대마(HEMP)나 HEMP를 토대로 생산된 칸나비디올(CBD) 등을 의료용으로 쓰는 것이다. 환각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스트레스 완화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CBD는 이미 치료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아 및 성인 뇌전증을 비롯해 자폐 범주성 장애아동, 알츠하이머 및 치매 등 뇌 질환 치료제로의 개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2018년 미국에서 HEMP를 농산물로 법제화한 데 이어 식품의약국(FDA)에서 대마초 기반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를 허가하는 등 식품·의약품 용도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럽사법재판소가 CBD를 마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CBD 오일은 현재 소아 뇌전증 환자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른 처방 규모는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시장 선점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재즈 파마슈티컬스(Jazz Pharmaceuticals)는 에피디올렉스 개발사인 영국의 GW 파마슈티컬스를 지난해 72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하는 등 대마초 의약품 산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즈는 지난 3월에는 1억달러를 투자해 영국에 새로운 제조 공장을 지어 2024년부터 가동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여기서 에피디올렉스 외에도 GW가 개발 중인 말기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나비시몰(Nabiximol)'을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나비시몰은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정부가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 대마 성분 의약품의 제조·수입을 허용한 데 이어 HEMP를 마약류에서 분리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계기로 의료용 대마 시장이 국내에서도 형성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직접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나섰다. 정부는 2024년까지 경북 안동시를 '산업용 HEMP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실증사업에 나섰다. 산업용 헴프 재배 실증, 원료 의약품 제조 및 수출 실증, 산업용 헴프 관리 실증 등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우선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HLB그룹은 대마 관련 원료의약품(API)을 개발하는 네오켄바이오에 의료용 대마 개발 업무협약을 맺고 약 20억원을 투자했다. 화일약품 도 지난해 카나비스메디칼의 지분 49.15%를 취득했다. 카나비스메디칼은 퇴행성 뇌질환의 예방·치료제로 CBD를 개발하고 있다.
메디콕스 는 호주의 대마 재배 전문기업인 그린파머스(Green Farmers)와 손잡고 대마 원료 확보에 나섰다. 지난 6월 대마 원료 수입 독점계약을 맺은 데 이어 그린파머스에 직접 투자를 결정하면서 CBD 99.9% 종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유한건강생활은 인벤티지랩과 손잡고 의료용 대마 장기지속형 주사제 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유한건강생활의 의료용 대마 후보물질 'YC-2014'에 인벤티지랩의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IVL-드러그플루이딕(DrugFluidic)'을 결합해 신약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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