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 조달시장의 '폭심지'가 된 강원도 춘천시 레고랜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를 목표로 2011년 첫 삽을 뜬 레고랜드 사업은 시작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레고랜드는 덴마크 장난감 제조업체 '레고'에서 계획한 테마파크다. 1958년 레고 글로벌 본사가 위치한 덴마크 빌룬에 처음 조성됐으며,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 세계로 확장됐다.
한국의 레고랜드 사업은 2011년 강원도가 영국 테마파크 개발업체 '멀린'사와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면서 첫발을 뗐다. 멀린사는 미국 디즈니를 잇는 세계 2위의 테마파크 기업으로, 덴마크 레고랜드 사업이 추진되던 시점부터 레고사와 협력해왔다.
강원 레고랜드는 춘천시 의암호수 내 중도로 낙점됐으며 정식 명칭은'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다. 전체 면적 8만4700평(축구장 39개), 워터파크·테마빌리지·마리나·호텔 등이 들어선 아시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 유치 및 1000명 이상의 신규 고용 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도 기대됐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난관에 맞닥뜨린다. 2014년 조성 부지로 예정된 곳에서 대규모 청동기 유적이 발굴된 것이다.
일각에선 유적지 보존을 위해 조성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왔으나, 문화재위원회가 유적 이전 보존을 전제로 개발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공사는 이후로도 갖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자금 부족 문제로 2018년 말까지 사업이 지지부진하다가, 시공사인 멀린 등이 직접 투자와 개발까지 맡는 총괄개발협약(MDA)을 체결한 뒤에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불공정 계약 논란도 있었다. 강원도가 테마파크 개발 및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위해 출자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앞서 800억원을 사업에 투자한 뒤, 지분 명목으로 레고랜드 임대료 30.8%를 받을 예정이라고 강원도 의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 계약서에 기록된 수치는 3%에 불과했다는 게 뒤늦게 발견됐다.
당초 2018년 완공 예정이었던 레고랜드는 기공식만 3번, 개장 시기는 7차례 연기된 끝에, 지난 3월 26일 가까스로 준공식을 열고 5월 5일 정식 개장했다.
레고랜드 공사가 한창이던 2020년, GJC는 레고랜드 인근의 도로·상수도시설 등 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 해에 GJC는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ABCP는 부동산·채권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CP)으로 단기간에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으나 만기는 짧다는 특징이 있다.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ABCP는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지급을 보증, 신용을 보강했기에 당시 시장은 무리 없이 이를 소화할 수 있었다. 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한 신용등급도 A1(적기상환능력 최고 수준)이었다. 레고랜드 ABCP는 증권사 10곳, 운용사 1곳이 보유 중이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난달 ABCP의 만기일(9월 29일)이 돌아오는 데도 지급금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김진태 강원도 지사는 지난달 28일 "GJC 회생을 (법원에) 신청하기로 했다"며 "법정 관리인에 제값을 받고 공사의 자산을 잘 매각하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도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채무 상환이 동결되기 때문에, 기관들이 투자금을 돌려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ABCP의 신용등급은 만기일로부터 하루 연체된 지난달 30일 C등급, 지난 4일에는 D(디폴트·채무불이행)등급까지 강등됐다.
신뢰도 높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신용등급 A1 CP가 순식간에 디폴트로 추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단기 자금조달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가 갑작스럽게 얼어붙었다. 그 여파로 회사채, CP 등의 발행 금리가 급등했다. 채권 금리가 안정화되지 않으면 기업의 유동성이 악화하고, 결국 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현재 강원도의회는 ABCP 상환 문제와 관련한 종합 대책 수립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채권안정펀드 재가동, 캐피탈 콜 준비 등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처를 집행하겠다고 했다. 11년 전 '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라는 숙원을 안고 출발한 레고랜드는 각종 악재를 마주한 국내 자본시장에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몰고 온 셈이다.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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