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보에 공적 업무까지 넘겨 공룡을 키운 건 이 사회
기업의 책임 추궁 더해, 인간 존엄성 되새기는 계기 되길
시장을 독점한 카카오가 최소한의 안전 장치 마련에 소홀했다. 이것이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핵심일까.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고 플랫폼 기업 규제 방안이 급물살을 타는 것을 보니 그런 시각에 의심을 품기 어려운 분위기가 팽배한 듯하다.
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는 왜 발생했고 누가 책임질 일인가. 데이터 백업·이중화·재해복구 시스템들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것은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성찰이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쓰기 편하고 다양한 용도를 가졌으며 주변 모든 이가 사용하는 좋은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다. 카카오는 사기업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며 결국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 일을 매우 잘 해냈음을 방증해줄 뿐이다. 우리는 카카오에게 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됐느냐고 따져물을 수도 없다. 카카오를 독점 사업자로 키워준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까지 나서지 않았던가.
우리와 정부는 플랫폼 기업에게 백신 접종 기록과 이동정보를 넘겼다. 방역뿐 아니라 조세·치안 기능까지 그들에게 도맡겼다. 카카오나 네이버가 어떤 회사인지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두 회사가 무슨 국영기업쯤 된다고 여길 것이다. 특정 기업이나 서비스가 시민의 삶을 지배하거나 사회 안전을 좌우하는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정부가 취했어야 할 사전 조치는 제대로 수행됐는가. 카카오에게 국가 수준의 권력을 부여한 정부가 이제와 안보 위협을 운운하는 건 그래서 자가당착적 측면이 있다.
우리는 모든 개인 정보를, 국가는 스스로 응당 투자하고 관리했어야 할 여러 공적 업무를, 손쉽게 민간회사에게 떠넘기고 그 편리함을 즐겼다. 그렇다고 민간기업에게 지위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무작정 강요할 수도 없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지 의무는 아니다. 그 기업이 사회가 준 지위를 남용해 시장 왜곡을 야기할 때만 정부와 시민은 개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카카오톡 사태를 독과점 이슈로만 국한 짓는 것은 이 사건이 주는 중요한 교훈을 간과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이란 많은 경고를 우리는 한 귀로 흘려보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건 미래의 일이고 카카오톡의 편리함은 현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알고리즘은 우리로 하여금 무슨 정당을 지지하고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이며 어디로 움직일 것인지 조종할 수 있다. 민간업자인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고리즘을 악의적으로 바꾼다 해도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스마트폰 내부도, 알고리즘의 구조도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멈춘 카카오톡을 원망하며 지배 시스템을 빨리 복구하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그저 어떤 기업 지하에서 불이 났고 나와 내 가족, 친구, 동료를 연결해주던 메신저 하나가 멈췄다는 것뿐이다. 소통은 중단됐고 생계 수단이 끊겼으며 우리는 카카오톡을 대신할 어떤 대안도 마련해놓지 않은 무기력함과 안일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독과점을 넘어 존엄성의 문제다. 이 사건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재설정할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라는 플랫폼 서비스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보내는 원대한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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