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못 넣는 개정안 최근 발의
서울시의회도 18일 비슷한 내용의 조례 발의돼
'마약 마케팅'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이용, 마약 많아지며 경고음
[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한번 접하면 잊지 못할 만큼 자극적인 '마약○○'".
한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일명 ‘마약 마케팅’은 앞으로 못 볼 가능성이 커졌다. 권은희 등 10명의 의원들이 지난 8월 마약과 같은 유해 약물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넣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법 개정 이후 고시·시행령 개정 등 후속 절차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서다. 서울시의회에서도 18일 마약류 상품명을 남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의 조례가 발의된 상태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팀장은 19일 "여러 개정안·조례가 발의되면서 앞으로 마약 마케팅에 대한 경각심이 마련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마약은 인간의 삶을 파괴할 정도지만 마약 마케팅은 알게 모르게 마약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낮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2015년에 “음식에 마약이라는 용어를 붙여서 사용하면 결국 사회 전체는 마약류 남용이라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음식·상호 등에 마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 팀장은 "막상 마약 마케팅을 규제할 법률이 마땅치 않았다"면서 "유일하게 옥외광고물 관리법이 규정하는 금지광고물을 통해 마약 마케팅을 규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껏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맛있다’는 것을 과장하기 위해 음식 이름에 ‘마약’을 붙이는 게 본격적으로 통용돼왔던 시점은 2000년대 이후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상호에 마약이 들어간 음식점은 현재 총 203곳인데, 2000년 이전에 개업한 9곳(4.5%)을 제외하곤 194곳(95.5%)은 그 이후에 개업했다. 올해만 해도 23곳(11.3%)이 신장개업했다.
마약칼국수·마약고기·마약국밥·마약떡볶이·마약찜닭 등 사실상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음식에 마약이 붙는다. 한 방문자는 ‘마약김밥’을 파는 식당의 리뷰에서 “왜 마약이라는 얘기가 나오는지 알 것 같다”며 “겨자소스의 여운이 계속 남는다”고 썼다. 최근엔 마약 마케팅이 발전해 ‘대마커피’·‘대마토스트’처럼 구체적인 종류가 들어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대마가 합법화된 태국에서는 대마를 뜻하는 카나비스·깐차·깐총이 상호·음식명에 표기돼 있으면 실제 성분이 함유돼 있다.
마약이라는 표현은 식품 이외에도 쓰인다. A온라인 쇼핑몰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은 결과, 마약베개·마약방석·마약침낭·마약매트가 자동완성 검색어로 올라왔다. 베개를 파는 한 판매자는 “‘푹신해서 기절할 정도’라는 것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마약이란 표현을 썼다”며 "관련한 컴플레인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도 마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가 되면서 마약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 반감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 5월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압수된 마약류는 1295.7㎏에 이르는데, 이는 2017년(154.6㎏)의 8.4배 규모다. 10·20대 마약사범도 같은 기간 2331명에서 5527명으로 2.5배 늘었다. 30대 주부 강모씨는 "어린 학생들은 마약이라는 물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까 봐 불안하다"고 전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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