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유행가 3·6·5’ 출간
1945년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유행가 분석
"유행가에는 시대 가치와 의미 담겼다"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유행가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유행가(사)는 시대의 관심사를 담아 당대에 공감을 낳고, 후대에 이해를 돕는다. 양복 입은 신사가 돈 없이 빈대떡 집에 들어가 매를 맞는다는 가사로 해방 이후 번지기 시작한 허세의식을 꼬집은 ‘빈대떡 신사’(1945년 이후), 전쟁과 어머니를 한 데 묶어 장병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전선야곡’(1950년대), 산업화 시절 고단했던 아버지의 삶을 노래한 ‘아빠의 청춘’(1960년대), 처음 기차 타는 시골영감의 상경기를 통해 전통과 근대 충돌의 시대상을 그린 ‘서울 구경’(1970년대), 군사 독재 시절 힘없이 물러난 어느 정치인의 상황을 빗댄 ‘바보처럼 살았군요’(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유행가는 ‘쿵작쿵작 쿵짜라쿵작’ 네 박자 속에 시대와 인생을 담고 입에서 입으로 구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유행가집은 역사서와 다름없다. 노래를 통해 근대 역사를 정리한 ‘유행가 3·6·5’(스콜라)의 저자 임진모 음악평론가를 만나봤다. 다음은 일문입답.
-시대별 유행가 365곡을 소개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지난해 MBC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루에 한곡씩 소개해 일 년간 365곡을 소개했다. 그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방송은 시의성을 따라 소개했지만, 책은 시대별로 정리했다. 선곡은 우리가 사랑했던 노래 중에 시대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잘 내포한 곡을 택했다.
-유행가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닌 듯하다.
▲맞다. 제가 78학번인데 당시 윤승희의 ‘제비처럼’(1977)이 나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부른 노래이기도 한데, 당시 들끓었던 가정파괴범 제비족을 염두에 두고 쓴 노래다. 외화벌이를 위해 남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일하고 왔더니 아내가 재산을 탕진했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노래가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고.
▲실제로 서태지의 ‘컴백 홈’은 많은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이끌었다. 당시 부모 세대와 자녀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가출이 속출했는데, 서태지의 귀가 선도 노래가 큰 화제를 모았다.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가사가 주효했다. 당시 방송국은 특집 방송까지 편성했는데, 한 가출청소년의 "(가출 후) 엄마 잔소리 안 듣게 돼서 신났는데 서태지 오빠 노래를 듣고 왈칵 집 생각이 났다"는 말은 큰 화제가 됐다.
-대개 평론가가 뽑는 노래와 대중의 선택에는 간극이 있던데.
▲평론가들이 뽑는 대중가요 명곡은 예술성이 중시된다. 대개 음악적으로 뛰어난 사람의 노래가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책에선 대중이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받는 곡들 중심으로 선택했다. 그렇다고 예술적으로 뛰어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대중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노래는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의외의 사람에게 가서 크게 히트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도 그렇지만 누군가가 거절한 게 다른 사람에게 가서 꽃피는 경우가 있다. 김국환 ‘타타타’(1992)도 원래 조용필한테 갔다. 근데 후반부에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는데, 그게 김국환한테 가서 터진 거다.
-유행가는 사회 현상이나 관심사를 압축해 공통 화제를 만든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관심의 초점이 개인화되면서 다양화하는 것 같은데.
▲과거는 관심사가 비교적 단일했는데, 지금은 뉴스 양이 엄청나다. 유행가가 아무리 시대를 대변한다고 해도 너무 다양해졌다. 과거 노래의 주된 수요층은 20~40대였다. 근데 지금은 10대 노래도 많고, 복고가 유행하면서 50대 이상에게 어필하는 노래도 많다. 수요층이 다변화되면서 옛날과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2016)이 젊은층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대중가요는 세대를 포괄했던 예전보다 협소해졌다.
-유행가는 가사부터 멜로디까지 시대 특성을 내포한다. 과거 목소리 기반의 생음악이 인기였다면, 최근에는 기획된 전자음이 대세를 이룬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읽는지.
▲사람들의 기호는 계속해서 바뀐다. 15년 전만해도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가 엄청난 인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부드러운 노래가 더 사랑받는다. 락보다는 랩하는 사람이 많다.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장윤정의 ‘어머나’가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다. 트로트를 전 연령이 두루 즐기는 음악 반열에 올렸다. 그런 현상을 어떻게 분석하나.
▲과거 트로트는 슬픔이나 아쉬움의 감정을 담았다. 그런데 지금은 흥겨워졌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트로트가 갖는 간결함과 솔직한 정서에 마음을 연다고 본다. 최근에는 세 박자 트로트가 등장하면서 흥이 더해졌다. 복고풍의 영향으로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등이 분위기를 잘 만들었다고 본다.
-BTS 노래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기 요인을 어떻게 보나.
▲방시혁 대표가 방탄소년단 성공의 반은 SNS라고 했듯 실제로 SNS 시대가 컸다. 거기에 노래와 퍼포먼스가 너무 좋았다. 특히 ‘불타오르네’(2016), ‘피 땀 눈물’(2016), ‘DNA’(2017), ‘봄날’(2017)이 정말 좋았다. 개인적으로 미국 진출 이후 노래는 좀 아쉽다.
-BTS 병역특례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솔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안 좋다. 소속사에서 빨리 입대와 관련된 부분을 결론 지어줘야 한다.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는 지금 입대하는 게 좋다. 정치권과 선을 닿고 그러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입대하길 바란다.
-표절 문제가 화제였다. 때마다 불거지는 문제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표절은 가슴 아픈 부분이다. 그동안 외국 음악 영향이 강했기에 아직도 표절 문제가 우리를 가두고 있다. 최근 유희열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거다. 유튜버들도 악의적으로 노래를 비슷하게 보이게 편집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적으로 아티스트 잘못으로 돌리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양심이다. 대중예술 아름다움의 핵심은 창의성과 독창성이다. 영향을 받을 순 있지만 그걸 슬그머니 집어넣는 건 비양심적이다.
-무의식적으로 표절이 이뤄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유희열의 경우 너무 비슷했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독창성을 향한 양심이 중요하다. 자기 점검이 중요하다. 대개 당사자는 표절 여부를 인지한다고 생각한다.
-표절을 검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의 사전에 검증하는 방법은 없나.
▲일각에서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점검이다. 작곡가가 쓰고 자긴 선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임진모 평론가>
대중음악 평론가. 팝 칼럼니스트다. 1991년부터 본격적인 음악 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 현재 국내 대표 평론가로 자리매김했다. 음악 평론 웹진 '이즘'을 운영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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