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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의 법조스토리] 스토커 끝판왕 보여준 영화 ‘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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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22년만에 통과… 사회적 인식은 아직 제자리
‘스토킹은 범죄’ 인식 자리잡고… 분리조치·처벌 등 강화 필요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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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저는 작가님의 열렬한 팬입니다(I’m your number one fan).”


1990년 개봉된 영화 ‘미저리(Misery)’에서 차량 전복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유명 작가 폴에게 주인공 애니가 들뜬 표정으로 처음 고백한 대사다.

죽음의 위기에서 폴을 구해내 정성껏 돌보던 전직 간호사 애니는 극중 폴이 집필하던 소설 속 여주인공 미저리가 마지막 편에서 결국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폴에 대한 선의가 광기어린 집착으로 바뀌어 폴을 감금하고 폭행하기 시작한다.


공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분노로 바뀌었을 때 얼마나 큰 공포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 작품이다.


지난 14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시간인 오후 9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그 같은 끔찍한 범행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가해자 전주환씨가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라는 점이었다.


전씨는 2018년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앞서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씨의 영장심사를 담당한 판사는 전씨의 재범 위험성을 알아채지 못했고, 올해 초 전씨의 스토킹범죄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성 관련 범죄 혐의 때문에 직위 해제한 전씨가 피해자의 근무지와 근무시간 등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방치했다.


1999년 법이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인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돼 시행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스토킹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스토킹 행위는 실정법상 경범죄 처벌법상의 ‘지속적 괴롭힘’에 해당돼, 고작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과거 가정 내 폭력에 경찰이 소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처럼 한때는 연인 사이였던 남녀간, 혹은 한쪽이 일방적이고 지나치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스토킹범죄에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관용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급한 건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러 대응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현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인 스토킹범죄의 법정형을 높이고,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위해의 원인이 되고 있는 ‘반의사불벌’ 조항을 없애자는 게 대표적이다.


이밖에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신변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나 가해자가 석방되더라도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능동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 제도’의 도입,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내지 보복 우려를 구속 사유에 추가하는 방안 등도 제시된다.


검찰은 구속 수사와 잠정조치를 적극 활용해 스토킹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로 하고 경찰과의 협의에 나섰다. 국회에는 경찰의 긴급응급조치나 법원의 잠정조치 중 스토킹범죄가 계속 행해질 우려가 있을 때 스토킹행위자의 위치 추적을 허용하는 법안까지 발의돼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움직임이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잇따라 위헌 결정이 난 윤창호법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적절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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