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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산돌 폰트 만들기 직접 해보니…"가치와 스토리를 담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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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폰트업계 1위 산돌
MS·애플·구글·IBM 등에 폰트 납품
38년 동안 720여종 폰트 개발
플랫폼 '산돌구름' 통해 12개국어, 2만4000여종 폰트 제공
내달 코스닥 상장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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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종이신문이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뉴스에서, TV나 유튜브로 보는 영상에서, 혹은 길에서 마주하는 간판이나 식당 메뉴판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폰트'다. 육필이 아니고서야, 디지털 시대의 글자는 누군가가 디자인한 폰트의 틀을 벗어나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독자가 읽고 있는 이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폰트를 하나의 창작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이는 많지 않다. 물과 공기처럼 꼭 필요하긴 하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해 쓸 수 있다는 인식이 박힌 탓이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1위 폰트 제작업체 산돌과 만나 폰트 탄생 과정을 들여다 봤다. 폰트 제작은 단순 자음과 모음 몇자를 그려 조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의뢰자와 제작자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가치와 스토리를 담는 작업이었다.

폰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이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폰트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이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폰트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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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에 어떤 가치를 담고 싶나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산돌 본사에서 만난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이 폰트 제작에 돌입하기 직전 꺼낸 첫 마디다. 자음과 모음의 획을 어떻게 스타일리쉬하게 표현할 것인가에만 치중했던 터라 폰트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심 소장은 "폰트는 의뢰·의도·소통·개발·출시라는 5가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면서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은 폰트 제작 의뢰자가 글자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길 원하는지, 폰트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때부터 폰트에 기업 고유의 스토리가 입혀진다.


의뢰자의 폰트 제작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소통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심 소장은 "폰트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온 기업과는 대화가 수월한 편"이라며 "반면 제작 목적이 모호한 데다 단순히 예쁜 그림체 하나 갖길 원하는 경우라면 긴 소통을 통해 제작 의도를 더욱 명확히 이끌어 내야한다"고 말했다.

ㅅ→ㅈ→ㅊ→ㅎ…디자인 구체화하기
본지 기자가 산돌의 폰트 제작 과정에 참여해 자음을 그려보고 있다.

본지 기자가 산돌의 폰트 제작 과정에 참여해 자음을 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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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에 '경제·디지털·신뢰·가독성·개성' 등의 키워드를 담고 싶다고 언급하자 심 소장은 10여종의 펜 중 하나를 골라 모눈종이에 'ㅅ'(시옷)을 그려보라고 했다. 디자인 콘셉트를 정하는 첫 단계다.


'ㅅ'은 단 2획으로 그릴 수 있는 간단한 자음이지만 사람마다 쓰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획 끝에 장식적인 꺾임이나 흘림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단 1획 만에 적기도 한다. 모음과 결합했을 때나, 초성이나 종성으로 들어갔을 때 크기와 모양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10여분을 고민하고 연습한 끝에 개성보다는 가독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정직한 시옷'을 그렸다.

그 다음 심 소장은 연필로 그린 자음에 다른 펜으로 두꺼운 외곽선을 그려볼 것을 제안했다. 심 소장은 "외곽선을 그리는 과정에서 곡선을 통해 폰트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면서 "폰트를 확대했을 때 느낌이 또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미리 확인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ㅅ'과 같은 방법으로 'ㅈ'(지읒), 'ㅊ'(치읓), 'ㅎ'(히읗)을 연이어 그렸다. 스타일의 뼈대가 되는 'ㅅ'에 한획씩 확장하며 'ㅊ'까지 나아간 다음 원그리기를 통해 'ㅎ'을 완성하는 식이다. 다른 자음과 모음, 숫자 등도 이런 방식으로 기본 스타일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의뢰자에게 수시로 초안을 보내 선호하는 폰트를 구체화 한다. 이 모든 과정도 소통의 일부다.

한글만 1만2000여개 글자 일일이 작업

한글은 자음이 14개, 모음은 10개다. 단순 24개 글자만 만들면 폰트 제작이 끝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오해다.


심 소장은 "폰트 제작 기간은 언어마다 다르지만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소요된다"면서 "한글의 경우 약 1만2000자를 일일이 작업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최근엔 '뷁'이나 '쌞'과 같은 파생단어들도 책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주 쓰이고 있어서 일일이 다 작업해야 한다"면서 "이런 단어들을 잘 구현해놓지 않으면 폰트 깨짐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꼼꼼한 작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

심우진 산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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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폰트…"신(新) 세리프 시대 올 것"
세리프와 산세리프의 차이.

세리프와 산세리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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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폰트는 크게 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s serif) 두 종류로 나뉜다. 세리프는 획의 삐침이나 굵기 변화 등으로 장식된 폰트다. 산세리프는 프랑스어로 '없는'이라는 뜻의 '산'(sans)을 붙인 것으로 장식이 없는 직선적인 글자를 말한다. 한글에서는 명조(바탕)가 세리프, 고딕(돋움)은 산세리프에 해당한다. 세리프는 책·신문 등 전통적인 인쇄물에 자주 쓰였고 산세리프는 PC나 휴대전화 등 디지털 환경에서 주로 사용돼왔다.


심 소장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영향력이 줄어든 세리프가 다시 주목받는 시기가 올 것이라 자신했다. 심 소장은 "고대 성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명서적의 폰트는 다 세리프였다"면서 "하지만 디지털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지난 20여년은 산세리프가 이를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IT기술과 폰트산업이 성장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도 인쇄매체처럼 화려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가 주목받는 움직임이 로마자를 사용하는 지역 중심으로 슬슬 시작되는 분위기"라며 "한글은 동아시아 문자 중에서도 획이 간결하고 체계적이라 다가올 신(新) 세리프 시대를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산돌

1984년 설립된 산돌은 국내 1위 폰트 회사로 38년 동안 720여종의 폰트를 개발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본 서체인 ‘맑은 고딕’, 애플 아이폰의 시스템 서체인 ‘애플 산돌 고딕 네오(Apple SD Gothic Neo)’, 구글의 ‘본고딕’ 등 대표적 한글 서체들을 제작해왔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20억원, 영업이익 48억원을 달성했다. 오는 10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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