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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냐 에너지 안보냐, 딜레마에 빠진 세계[기로에 선 기후정책①]

최종수정 2022.09.20 08:08 기사입력 2022.09.20 07:30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간) 리즈 토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북해에서의 원유 및 가스 시추를 위한 신규 라이선스를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셰일 가스 추출할 수 있는 수압파쇄(fracking) 기법에 대한 금지를 해제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은 지난달 16일 올해 1분기 EU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2억9000만톤(t)을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6% 늘었다고 밝혔다. 유럽 가스 수요의 40%를 차지하던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차단하면서 에너지 안보 위기에 직면한 유럽 각국이 가스를 대신해 석탄 등 화석 연료 사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 7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의 55%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담은 ‘핏 포 55(Fit for 55)’를 공개했지만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 때문에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을 포함, 전세계 130여개국 정상들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에 모여 기후변화가 몰고올 위기에 공감하고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1년도 안 돼 각국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사이에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에너지 위기가 촉발한 심각한 물가고에 세계 각국은 화석 연료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취임과 동시에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을 천명하며 전 세계 기후변화 정책을 주도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조차 대선 전 공약을 뒤집고 국유지에서 석유·가스 시추를 허용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급습하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달리 지난해까지만 해도 궁지에 몰렸던 석유 기업들은 올해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엑손모빌, 셸, BP 등 글로벌 석유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30~40% 급등했다.


이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자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기후변화의 고통은 올해도 비껴가지 않고 있다. 올 여름 전 세계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어야 했다. 각국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압박과 에너지 안보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있다.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는 지난 14일자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사이의 혼돈’이라는 기사에서 "최근의 상황은 에너지와 기후 변화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탄소배출의 50%를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딜레마"라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일 발간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딜레마 혹은 세기의 기회?’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감은 에너지 안보가 유럽에 중대한 도전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현 상황을 진단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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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악몽’ 日 국민 절반 이상 "원전 찬성"

최근 독일 연방 통계청은 올해 상반기 독일의 석탄 발전량이 82.6킬로와트시(kWh)로 전년동기대비 17.2% 늘었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탈탄소 국가였던 독일마저도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자 화석 연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탄소 배출이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하는 ‘탄소중립(Net Zero)’ 목표 달성에 대한 회의론도 함께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 가스 공급이 중단되자 미국과 캐나다는 셰일 가스 추출을 다시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액화천연가스( LNG) 수출 1위 국가에 올랐다.


하지만 각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국들은 화석 연료로 발등의 불을 끄는 동시에 친환경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기피 대상이었던 원전이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당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차세대 원전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에 일본 국민의 여론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6~18일 사이 조사한 결과 기시다 총리의 원전 신·증설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이 53%로 부정적(38%) 응답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탈원전에 가장 앞장섰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의회는 지난 1일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의 수명을 2030년까지 5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45년 탄소 배출 없는 전력 생산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석탄 발전과 함께 원전도 폐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전력 수요가 급등하자 가장 효율적인 원전 발전에 다시 눈을 돌린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이었던 지난 2월 초 신규 원전 14개를 건설해 원전 발전량을 25기가와트(GW)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영국도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재임 시절인 지난 4월 에너지 대책을 발표하며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24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잡고 2030년까지 원전 8기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기준 영국의 원전 발전량은 9GW로 전체 전력 생산의 20%를 차지했다. 신임 트러스 총리 역시 원전 건설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원전 수명 연장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올해 원전을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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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재생에너지 비중 동시 확대해야"

세계 각국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독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발트해 연안 8개국 정상들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2030년까지 해상 풍력 발전량을 20기가와트(GW)로 7배 늘리겠다고 천명했다.


독일과 덴마크는 발트해에 있는 덴마크의 보른홀름 섬에 90억유로를 투자해 대규모 풍력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보흔홀름 섬에서 독일 전력망까지 470㎞ 길이의 해저 케이블이 연결되며 2030년 3GW 규모의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돼 최대 4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덴마크 외에도 여러 유럽 국가와 풍력발전 계획을 마련해 유럽의 에너지 안보와 기후중립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환경 부문 싱크탱크인 엠버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가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탈탄소화 가속화로 대응하는 유럽 정부가 19개국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엠버는 여러 유럽 국가가 친환경 전환을 가속하면서 2030년까지 EU 전력 생산에서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63%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2019년에 추산한 55%보다 상향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신재생 에너지 발전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2030년까지 해상 풍력 발전량을 현재 10GW에서 50GW로 다섯 배로 늘리고 스코틀랜드에 더 많은 풍력 터빈을 설치해 육상 풍력 발전량도 늘릴 계획이다. 태양광 발전량도 다섯 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영국의 현재 육상 풍력과 태양광 발전 용량은 14GW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에너지위원회는 지난달 10일 2030년까지 서부 해안에 최대 5GW 풍력 터빈을 설치하고 2045년까지 최대 25GW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IMF의 세르한 코빅 연구원은 "1980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 39개국에 대한 실증 연구를 진행한 결과 원전과 재생에너지, 탈탄화수소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다면 탄소 배출을 상당히 줄이고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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