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벌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7월19일 서울고법 3층의 한 법정. 한국 국적의 이인혜양(가명·13)이 몽골인 엄마(39)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말했다. 검찰은 인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30여일간 등교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엄마가 딸의 교육을 '방임'했다"며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형사 재판에 넘겼다.
◆"학교에서 법원으로 이어진 차별"
엄마는 한국인 남성과 2008년 인혜를 낳았다. 이혼 후엔 홀로 양육을 책임지다가 2016년 지금의 몽골인 남편과 재혼했다. 둘째도 태어났다.
엄마는 인혜의 초등학교 담임, 학교 측과 갈등을 겪었다. 딸의 교내 따돌림과 교육상 차별 문제를 지적하거나 남편의 비자 발급을 위한 탄원서 작성을 부탁하는 과정 등에서 생긴 일이었다. 2019년 5월 모녀는 '가족 비자신청' 등을 사유로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몽골로 출국했다. 엄마도 자녀양육(F-6-2) 비자가 2018년 나오지 않아 단기일반(C-3-1) 비자를 갱신해 오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몽골 체류 기간이 신청서의 허가 기간을 넘기자 학교는 "30여일간 인혜를 등교시키지 않았다"며 엄마를 신고했다. 인혜는 2학기가 시작하고 돌아와 바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담임은 1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학교로 와 난동을 부렸다"거나 "피해 의식과 망상이 있고, 주민센터가 준 쌀에서 '쥐가 나왔다'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고 들었다. (정신적인) 치료가 꼭 필요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재판장은 "피고인이 좀 적대적이죠? 피해의식이 왜 생겼는지 의문이 든다"며 "좀 불편한 학부모셨죠?"라고 했다. 피고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변호인조차 "의사소통이 저랑도 안된다. 변호인을 몇명이나 바꿨던지"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엄마는 "저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다. 주민센터 난동 등 담임의 이야기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1심에선 제게 이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인혜를 증인으로 불러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란 형사 절차의 대원칙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벌금 500만원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항소심에서 인정된 '무죄'… "입국 늦춰질 충분한 사유"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서승렬) 심리로 열렸다. 1심에서 증인으로 나오지 못한 인혜는 항소심에서 엄마의 무죄를 탄원했다. 엄마는 "한국인들은 말을 많이 하면 저를 적대적이라고, 말을 안 하면 바보 같다고 했다. 외국인을 외계인이 아닌 인간으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일 항소심은 1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낸 증거만으론 피고인이 아이를 방임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은 친모로서 교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결석 기간 몽골에서 엄마가 인혜를 원어민 영어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를 풀게 한 점, 한국에서 국제학교와 대안학교에 다니기도 한 점 등에 주목했다. 담임조차 "아동을 홀로 두고 출국하면 아동복지법상 방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엄마에게 고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특히 '남편 등 다른 가족의 한국 입국'이 주된 출국 목적이었다고 해도, 이를 아동의 교육과 별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피고인의 가족 모두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 한다'는 아동복지법의 기본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다른 사유가 있어서 그 입국 시기가 늦춰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에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한 점에 법원이 깊게 생각을 했다"며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우리 사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엄마 "한국인 아동의 문제… 국가가 자국민 문제에 더 따뜻했으면"
항소심에서 무죄가 인정된 엄마는 본지에 "공무원이 매뉴얼을 이용해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단 것을 알게 됐다. 정말 고의적인 신고였다. 이 일로 딸은 수년째 '의무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늘 같은 서류로 발급받던 제 자녀양육 비자가 2018년 안 나왔다가 (형사 재판을 받고) 지난해엔 발급됐다.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안 줬는지 모르겠다"며 "이전엔 저보고 나가라고 해서 문제가 됐고, 이 사건에선 나가서 문제가 생겼다. 제가 외국인 엄마여서 문제인가 싶다. 정말 아동을 위해서라면,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한국 사회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를 우선 고려해주면 좋겠다. 아동복지법에서도 모든 아이는 차별없이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외국인도 아닌 자국민의 문제다. 한국인인 딸을 데리고 나가라고 할 게 아니라, 자국민 일에 더욱 따뜻하게 접근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사가 무죄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하면서, 엄마는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