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주민들, 쓰레기통 뚜껑 여는 큰유황앵무 골칫거리
주민들 벽돌 등 동원해 막지만 높은 지능으로 다 열어 버려
신발 끼워 넣기, 물병 묶어 놓기 등 아이디어 백출
과학자들 "종간 혁신 무기 경쟁 벌어져...둘 다 잘 적응"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간과 앵무새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호주 시드니의 주민들이 무슨 수를 써도 음식물을 먹기 위해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버리는 영악한 앵무새들과 머리싸움을 벌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앵무새 간 이런 경쟁을 '종간(種間) 혁신 무기 경쟁(interspecies innovation arms race)'으로 부르며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다.
13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최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의 논문이 게재됐다. 이에 따르면 시드니 등 호주에서 자생하고 있는 큰유황앵무(sulphur-crested cockatoos)들이 빵부스러기를 찾아 먹기 위해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바람에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대 50cm 크기인 큰유황앵무들은 부리와 날개를 이용한 정교한 몸놀림으로 쓰레기통 뚜껑을 교묘히 여는 행동이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2018년 이전에는 3개 지역에서만 관찰됐지만 2019년 말에는 44개 지역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 새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으르렁거리거나 건방진 행동으로 호주 주민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이런 앵무새들의 쓰레기통 습격을 막기 위해 시드니 인근 주민들도 무려 52개 유형의 각종 잠금 기술을 고안해내면서 맞서고 있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드니 교외 4개 지역에 배치된 3283개의 음식물 쓰레기통을 조사했다. 이 결과 절반 이상의 음식물 쓰레기통에는 앵무새들의 뚜껑 열기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고안해 놓은 각종 장치가 있었다. 또 설문 조사에서 51개 지역 172명의 주민들이 앵무새가 뚜껑을 여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고민은 특히 쓰레기 수거 트럭이 왔을 때는 손쉽게 뚜껑을 열고 비울 수 있지만, 앵무새는 못 열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뚜껑을 벽돌이나 다른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 놓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곧바로 앵무새들이 벽돌 등 물건을 밀어내는 법을 배우면서 써먹을 수 없게 됐다. 한 주민은 "벽돌이 잠깐 쓸모가 있었지만 앵무새들이 너무 똑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어느 주민이 고안한 쓰레기통 뚜껑의 경첩 사이에 밑창이 푹신한 운동화를 끼워 놓은 방법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수거 트럭에 쓰레기통이 거꾸로 세워졌을 때는 뚜껑이 열리지만 앵무새의 힘으로 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떤 주민은 쓰레기통 뚜껑 위에 물이 든 물통을 묶어 놓은 이도 있고, 테두리에 스파이크를 박아 놓은 주민들도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사람과 앵무새라는 두 종이 쓰레기통을 둘러싸고 '종간(種間) 혁신 무기 경쟁'을 벌이면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한 것"이라며 "앵무새들은 뇌의 크기가 크고 사회성이 뛰어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면서 훌륭하게 적응했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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