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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 논란과 콤플렉스…성기훈의 해방은 이정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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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남우주연상 이정재 배우인생
편법 없이 규칙 따라 사회 재현…아이와 어른 얼굴 함께 보여줘
콤플렉스 벗으려 석사 마치고 청춘서 성인연기로 제2전성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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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에는 아이들 놀이가 나온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 놀이’…. 세상을 에워싸고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규칙에 근거해 타자와 맞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모방하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연기하듯 놀이하며 사회를 재현한다. 그 순간 게임은 쾌락이나 이완과 동의어일 수 없다. 승자와 패자를 요구해 삶의 문제로 확대된다.


배우 이정재는 주인공 성기훈을 연기하며 아이와 어른의 얼굴을 모두 보여준다. 모처럼 돌아간 동심의 세계에서는 해맑고 낙천적이다.

"(구슬치기) 저도 좀 합니다. 아, 다행이네요. 영감님, 아니 깐부님. 우리가 이 동네 구슬 싹 다 쓸어 버립시다."


흥분한 말투지만 자세는 사뭇 진지하다. 게임을 할 때면 무섭게 몰입하는 아이 같다.


이정재는 텔레비전과 스크린이라는 놀이 세계에서 아이 같았다. 규칙을 따르는 법을 배우며 또 다른 삶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매번 승자의 위치를 고수할 듯했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와 영화 ‘젊은 남자(1994)’로 백상·대종상·청룡상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영화 ‘태양은 없다(1999)’로 청룡상 최연소 남우주연상까지 꿰차 한동안 흥행 보증수표로 통했다.

외형만으로도 매력이 넘쳐흘렀다. 큰 눈과 긴 눈꼬리의 인자한 인상. 콧날과 턱선이 날카로워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제격이었다. 그러나 긴 대사를 전달하면서 한계에 직면했다. 배역의 내면을 표현할 만큼 성숙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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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아이는 규칙을 종종 각색한다. 변모를 통해 삶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가볍게 한다. 이정재는 편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규칙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해 대학원에서 공연영상예술학 석사까지 마쳤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부단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위치는 계속 패자 쪽으로 기울었다. 2008년 ‘1724 기방난동사건’부터 출연작들이 번번이 흥행에 실패했다. 상대 배우가 호흡을 맞추기를 거절해 하차 위기에 빠질 정도였다. 연기는 날로 발전했지만 소모된 청춘의 이미지를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유일한 해방은 게임을 통해 이뤄진다. 경쟁이 난무하는 폭력 속에서 계산하고 투쟁하며 움직인다. 자신들을 만들어낸 가해자를 위해 임무를 완수한다. 성기훈은 그렇게 사회에서 탈출한다. 연기라는 게임에 갇힌 이정재도 같은 과정을 밟아 슬럼프를 탈출했다. 자신을 만들어낸 대중의 관심부터 파악했다. 책, 그림, 영화를 통해 영감을 얻으며 일상에서 감각을 곧추세웠다. 경험과 지식, 정보의 저변을 넓혀 표현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언제까지 청춘스타일 수는 없잖아요. 성인 연기를 하게 되는 시점에 거의 모든 배우가 겪는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젊은 배역을 맡기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선이 굵은 역할을 맡기자니 젊고…. 애매한 위치에서 갈등을 겪었던 거죠. 그렇게 오지도 않는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니 진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마음으로 꾸준히 달려온 듯해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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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하녀(2010)’로 재기했다. ‘도둑들(2012)’, ‘신세계(2012)’, ‘관상(2013)’ 등의 연이은 흥행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제는 배역 설계의 달인이다. 평범한 인물의 대사도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매력적인 저음으로 리듬을 가미해 입체성을 강화한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힘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이정재는 지금도 배역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은사인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를 찾는다. 설경구, 유오성 등 연기파 배우들의 스승이다.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주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운다. 이정재는 그 덕에 다른 배우들이 기피하는 악역까지 자처하며 도전적인 자세로 삶 전체를 재무장했다. 더는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처럼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연기지만 이제는 조금 편해진 느낌이 있어요. 꾸준한 노력이 지금과 같은 결실로 이어진 것 같아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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