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치매센터 '실비아헴메트'
해외에서도 교육, 인증 수요↑
보건복지청은 치매국가지침 펴내
[아시아경제 스톡홀름(스웨덴)=김영원 기자]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지에서 30분가량 떨어진 왕실 거주지인 드로트닝홀름 궁전. 관광객이 가득한 이곳에서 15분 정도만 걸으면 왕립치매센터인 실비아헴메트(Silviahemmet)에 도착할 수 있다. 조용한 주택들 사이, 녹음이 우거진 곳에 위치한 실비아헴메트 내부는 조명을 켜지 않아도 환한 햇살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겨울에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천장에 뚫려 있는 넓은 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치매 환자들이 사용하는 퍼즐과 물감, 캔버스를 비췄다.
왕비, 치매센터를 만들다
실비아헴메트는 스웨덴 왕실이 운영하는 시설로, 1996년 설립됐다. 실비아 왕비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치매에 관심을 갖게 된 국왕과 왕비가 실비아헴메트를 세웠다. 현재 설립자인 실비아 왕비가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빌헬미나 호프만 실비아헴메트 이사장 겸 스웨덴 치매센터 대표는 "왕비가 궁전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 회의를 주재하기도 한다"며 "보통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잘 밝히지 않는데, 왕비가 공식적으로 미디어에 밝혔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실비아헴메트는 치매 관련 의료·돌봄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주간보호시설을 운영한다. 하루 10명의 치매 환자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곳에 머무른다. 주간보호시설의 일과는 그날의 날씨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소풍을 나간다. 야외 활동을 싫어하는 환자는 내부에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특유의 넓고 많은 창문 너머로 새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주간보호시설이 운영되고 있지만, 실비아헴메트는 독특하게 젊은 나이의 치매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제일 젊은 환자는 48세이고, 평균 연령은 55~64세다. 일반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되는 나이인 65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호프만 이사장은 "연세가 드신 환자분들은 돌보는 시설이 많은 반면 (젊은 치매 환자인)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주간보호시설 화장실 내부에는 색 구분을 어려워하는 치매 환자가 구별하기 쉽게 강렬한 색으로 변기, 스위치 등을 칠했다. 거울에는 커튼이 달려 있다./사진=김영원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다른 시설보다 환자의 연령은 낮을지라도 환자에 대한 배려는 시설 곳곳에 녹아 있다. 화장실 내부에는 변기, 전등 스위치 등을 치매 환자가 쉽게 구분하고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강렬한 색으로 구분했다. 변기는 파란색, 스위치는 빨간색이다. 보통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은 꽃무늬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치매 환자가 자신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 거울을 보면 놀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서도 "실비아인증 받겠다"
무엇보다 실비아헴메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치매 관련 교육이다.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간호사, 의사, 요양보호사는 이곳의 교육과정을 통해 '실비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교육 후 인증을 받은 인력들에게는 실비아 간호사, 실비아 보호사 등 호칭이 붙고, 빨간색 배지를 준다. 기자가 실비아헴메트를 방문한 날에도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인 베름되에서 온 요양보호사 16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은 두 명의 실비아 간호사가 맡았다. 호프만 이사장은 "이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일하는 기관으로 돌아가 대표로 그곳 직원들에게 다시 배운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개별 인력이 아닌 요양기관 전체가 실비아 인증을 받기도 한다. 다만 보호사는 물론 안내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기관 전체 인원의 70% 이상이 실비아 교육을 수료해야 기관 인증을 얻을 수 있어 비교적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유효 기간은 3년으로, 이 기간 재평가를 통해 인증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현재 160개 기관이 실비아 인증을 받았고, 독일이나 브라질 등 해외 기관에서 인증을 받아가기도 했다. 최근 해외 국가에서 실비아헴메트의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 다양한 언어로 온라인 교육도 준비 중이다. 이미 영어, 리투아니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교육이 제공되고 있으며 곧 중국어 교육이 개시될 예정이다.
스웨덴은 치매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치매 인식 향상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2008년 치매센터가 설립돼 온라인으로 15개의 무료 교육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치매에 걸렸을 때의 성생활, 치매와 음악, 치매와 예술 같은 다양한 분야의 자료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고, 50만명 정도가 이용했다. 아울러 경찰, 경비원 등 얼핏 치매와 동떨어져 보이는 인력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한다. 호프만 이사장은 "스웨덴에서는 치매 환자가 주로 집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바깥을 드나들면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가게에서 절도로 오인당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며 "치매 환자의 특성을 알아야 경찰, 경비원도 실제 상황에서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국가 지침으로 섬세하게 대응
스웨덴 복지당국은 치매를 주요하게 대응해야 할 병으로 판단하고 2010년 국가 치매 지침서를 발간했다. 스웨덴은 심각한 만성질환이나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질환에 대한 국가 지침을 발간하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18개 지침 중 하나가 치매다. 스테판 브레네 스웨덴 보건복지청 국가치매지침 담당은 "치료와 지원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이 담겨 있어 정책입안자가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침에는 치매 관리 권고사항이 1부터 10까지의 우선순위로 나뉘어 구분된다. 각 사항별로 과학적 근거와 피해야 할 점도 수록됐다. 요양시설은 이러한 권장 사항을 운영에 활용할 수 있다. 프리다 노벨 담당은 "예를 들어 치매 환자 관리에 있어서 의료기관, 보호자, 보호사의 팀워크는 우선순위 1(priority 1)로 가장 강력하게 권고되는 것이고, 치매 환자에 대한 우울증 약 처방 같은 경우에는 우선순위 8로 다른 조처를 해본 뒤 나중에 시도할 수 있다고 권고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침이 강제성이 있지는 않지만, 현장 요양보호사들은 지침을 중요하게 여기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지침은 2014년 후속 평가를 거친 뒤 2017년 개정판으로 나왔다. 이전보다 '국가 주도'라는 부문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개선됐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지침 개정이 주기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지만, 팀워크처럼 중요한 부문에 대해서는 1년에 한 번 평가를 진행하기도 한다. 노벨 담당은 "앞으로 직원 교육, (치매 환자의) 가족 지원에 좀 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톡홀름(스웨덴)=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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