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덮친 '괴물 몬순'…기후변화 탓 패턴 불규칙·폭우 빈도↑
'기후 위기' 놓고 선진국-개도국 시각차에…'피해 보상'도 어려워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전례 없는 '괴물 몬순'(Monster monsoon)으로 인한 파키스탄의 피해가 약 41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파키스탄 한 해 예산의 약 74%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미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파키스탄과 같이 기후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들이 우후죽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피해보상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기후 위기가 촉발한 최악의 몬순 우기 홍수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파키스탄 당국에 따르면 인구의 15%인 3300만명이 수해를 입었다. 사망자도 약 1400명이 달한다. 호수들이 범람하면서 서울 면적 13배에 달하는 8094km²의 농경지와 19개의 상수도 시스템 등이 파괴됐다. 또 가옥, 도로, 철도, 가축 및 농작물이 유실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인성 전염병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홍수로 사회 인프라가 마비돼 깨끗한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이재민들이 어쩔 수 없이 홍수 물을 마시는 상황이다.
경제적 피해도 막심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9일 파키스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잠정 집계한 파키스탄의 홍수 피해 규모가 300억달러(약 41조6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는 파키스탄 한 해 예산의 약 74% 달하는 금액으로, 파키스탄 정부에 따르면 2022-23년 예산은 9조5200억 파키스탄 루피(약 55조원)이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2021년 파키스탄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약 9% 규모다.
이번 폭우는 파키스탄의 6월과 9월 사이에 발생하는 남아시아 몬순과 관련 있다. 남아시아 몬순은 여름 동안 이 지역에 습한 공기를 가져와 폭우를 유발하는 계절풍을 뜻한다. 여름 몬순은 파키스탄에서 연간 물의 65~75%를 제공하는데, 농업과 주민들의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몬순 폭우가 쏟아진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 하이데라바드에서 한 남성과 소녀가 뗏목을 타고 침수된 거리를 지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문제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몬순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폭우가 내리는 빈도가 잦아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31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올 6월~8월 파키스탄은 평년 강우량의 190%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다. 1961년 이후 가장 많은 비가 내린 7월의 경우 일반적인 몬순 강우량의 약 26%를 초과했다.
몬순 기간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홍수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앞서 내린 비로 토양이 흡수할 수 있는 빗물의 양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강수량은 8월에 최고조에 달하면서 심각한 피해를 낳았다.
이를 두고 셰리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변화 장관은 '괴물 몬순'(Monster monsoon)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괴물 몬순이 전국에 끊임없는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8주 동안 계속된 폭우로 인해 이 나라의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홍수"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런 상황을 '기후 재앙'이라고 규정하면서 기후 변화에 선진국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레흐만 장관은 지난 4일 가디언과의 "지구 온난화는 세계에 닥친 존재적 위기이고 파키스탄은 그라운드 제로(대재앙의 현장)가 되었다"며 "하지만 파키스탄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 1%도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파키스탄의 홍수와 관련해 부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0일(현지 시각) 몬순 우기에 큰 수해가 난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를 찾아 주요 20개국(G20)이 오늘날 온실가스 80%를 배출한다면서 "파키스탄 같은 개발도상국이 이런 재난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부유한 나라가 도와줘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은 파키스탄이지만 내일은 당신의 나라가 피해국이 될 수 있다"며 "글로벌 위기이며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기후 위기' 놓고 선진국·개발도상국 시각차…'기후 재앙' 비용은 어떡하나
각국은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기후 위기 책임을 놓고는 의견 엇갈리고 있다.
선진국은 당장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선 개도국이 탄소배출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개도국은 누적 탄소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진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 주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기후 피해 비용도 합의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후 피해국들에 대한 보상금을 선진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AK 압둘 모멘 방글라데시 외교부 장관은 "많은 이들이 목숨을 목숨과 미래를 잃었다"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미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미아 모틀리 총리도 COP26 연설에서 "가장 위험에 처한 열대섬 국가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량은 전 세계 1% 미만이지만 북반구 국가들은 70%"라며 "희생자들에게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고 부도덕하다"고 짚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기후 위기 피해 보상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 등 선진국들은 앞서 2008년 개도국들의 기후 피해 극복을 위해 2020년까지 해마다 최소 1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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