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부문 후보…작품상 두고 '석세션'과 치열한 경쟁
이정재 남우주연상·오영수 남우조연상 수상 높게 점쳐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내일 새로운 역사를 쓴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에서 작품상과 주·조연 연기상에 도전한다.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는 1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을 한다. '오징어 게임'은 TV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황동혁), 각본상(황동혁), 남우주연상(이정재), 남우조연상(오영수·박해수), 여우조연상(정호연) 등 여섯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트로피를 거머쥐면 각 부문에서 비영어권 또는 한국 배우 최초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특히 작품상은 미국 본토의 쟁쟁한 작품들을 모두 따돌린단 점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수상할 자격은 충분하다. 황동혁 감독은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사회 밑바닥을 구르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서바이벌 게임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형태는 게임을 정교하게 설정해 승리하기 힘든 여타 서바이벌 작품들과 다르다. 간단한 아이들의 놀이를 빌려 직관적으로 게임을 따르게 한다. 이야기도 어렵지 않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서 패하면 바로 목숨을 잃는다. 황 감독이 대본을 완성한 2009년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치부됐다. 10여 년이 지나 반응은 판이해졌다. 공개 4주 동안 세계 1억4200만 가구가 시청했다. 그 사이 넷플릭스 주가는 10% 이상 상승했다.
경쟁작은 '석세션', '유포리아', '베터 콜 사울', '세브란스: 단절', '기묘한 이야기', '오자크', '옐로우 재킷' 등 일곱 편. '오징어 게임'만큼 흥행하진 못했으나 하나같이 다각도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특히 '석세션'은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등 다수 대중문화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했다.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격인 TV 드라마 시리즈 앙상블상을 가져갔다. 과거 에미상에서 거둔 실적도 가장 돋보인다. 2018년 첫 번째 시즌으로 각본상을 받았고, 2020년 두 번째 시즌으로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싹쓸이했다.
'오징어 게임'은 '석세션'의 아성을 무너뜨릴 사실상 유일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정재와 오영수는 각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동안 에미상 주·조연상 부문에 아시아 국적 수상자가 나온 적은 없다. 남우 주·조연상의 경우 아시아 배우의 후보 지명 자체가 처음이다. 여우조연상은 중국인 티나 첸과 한국계 캐나다인 샌드라 오, 인도계 영국인 아치 판자비 등이 후보에 올라 판자비만 수상했다. '오징어 게임'은 주·조연상은 아니지만 지난 4일 열린 크리에이트 아츠 에미상 시상식에서 게스트상(이유미)을 거머쥐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게스트상은 에피소드마다 주인공급 역할을 한 배우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할리우드 리포트 등 현지 매체들은 이정재를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보고 있다. 이정재는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 게임에 참가하는 성기훈을 연기했다.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표정과 행동으로 절박한 상황을 온전히 전달하면서도 따듯한 인간미로 극의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그 덕에 미국배우조합상, 스피릿어워즈, 크리틱스초이스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번에도 경쟁 후보는 비슷하다. '석세션'의 제레미 스트롱·브라이언 콕스를 비롯해 '세브란스: 단절'의 아담 스콧, '오자크'의 제이슨 베이트만, '베터 콜 사울'의 밥 오든커크 등이다.
이정재 못잖게 수상이 높게 점쳐지는 배우는 남우조연상의 오영수다. '오징어 게임'에서 어린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는 오일남을 그렸다.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을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로 훌륭하게 보여줬다.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만큼 이번 경쟁에서도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는다. 후보 명단에 함께 이름을 올린 후보로는 '오징어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박해수를 비롯해 '석세션'의 키에라 컬킨·니콜라스 브라운·매슈 맥퍼디언,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 '세브란스: 단절'의 존 터투로·크리스토퍼 월켄 등이 있다. 박해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거액의 빚을 진 뒤 재기를 위해 게임에 참가하는 조상우를 연기했다. 영리하게 게임을 이끄는 엘리트로서 면면과 일말의 인간성으로 고민하는 복잡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황 감독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에미상 후보로 오른 열네 부문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는 박해수의 남우조연상 후보 지명"이라며 "이렇게 명망 있는 시상식이 그의 대단한 실력을 알아봐 줘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주연상과 크리틱스초이스 여자 연기상을 받은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이 데뷔 작품이다. 북한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남한으로 데려오려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게임에 참가하는 새터민 강새벽을 연기했다. 점진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모습을 무난하게 그렸다고 평가받았다. 에미상에서 수상 확률은 낮게 점쳐진다. '베터 콜 사울'의 레아 시혼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오자크'의 줄리아 가너, '세브란스: 단절'의 패트리샤 아퀘트, '옐로우 재킷'의 크리스티나 리치, '석세션'의 J. 스미스 캐머런·사라 스누크, '유포리아'의 시드니 스위니 등 다른 후보들의 면면도 못잖다고 평가된다.
한편 '오징어 게임'은 지난 4일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 시상식에서 게스트상(이유미)을 비롯해 시각효과(정재훈), 스턴트(임태훈), 프로덕션디자인(채경선) 등 네 부문 수상에 성공했다. 한국 드라마가 주류 콘텐츠로 자리를 잡았음을 알리며 작품상과 주·조연 연기상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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